혼자 놀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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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 수 있는 힘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7.2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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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play)는 환경에 대한 신뢰를 가리킨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환경에 대해서 알아간다. 놀이에는 자발성, 창조성, 생명력, 기쁨과 즐거움의 요소가 담겨 있으며, 우리 삶의 현장을 변화시키는 기능을 감당한다. 

M은 시골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생활하고 있는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다. 키는 작고 통통하며, 허리는 약간 구부정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PC방에서 게임을 즐겨했고, 3학년 때에는 아버지 카드를 이용해서 게임 아이템을 30여 만 원 구입했다. 그리고 4학년 때에는 50여 만 원, 5~6학년 때에도 몇 백만 원의 게임 현질을 했다. 왜냐하면 축구 게임인 ‘피파온라인3’을 하다보면, 심심하지 않고, 시간도 빨리 가기 때문이다. 번번이 혼을 내고 넘어가던 아버지는 M의 행동에 심각함을 느껴서 스마트폰을 압수하고, 컴퓨터 자판기를 숨겨버렸다. 그러자 M은 TV만 시청하고, 심심하고 놀거리가 없다며 아버지를 조르고 있다. 

M은 어머니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M이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M은 조부와 아버지, 남자들만 삼대가 살았다. 아버지는 밖에서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항상 술에 취해 있었고, 그때마다 M에게 언어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폭력을 가했지만 조부의 따뜻한 돌봄이 심리적 울타리로 작용했다. 그러나 M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조부가 사망하자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TV만 시청했다. 그 모습이 마음 한 켠에서 안타까웠던 아버지는 PC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주셨고, 그때부터 M은 심심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게임에 과의존 하게 된 것이다. 

도날드 위니캇(Donald Winnicott, 1971~ 1997)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be alone)과 ’관계할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be related)’에 주목한다. 아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는 것은 신뢰할만한 엄마, 또는 주 양육자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때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대상(good object)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엄마의 돌봄(maternal care)이 아이로 하여금 믿음을 확립케 하고, 아이에게 성숙과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준다고 보았다. 곧 엄마라는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즐겁고 창조적인 놀이를 홀로 행할 수 있고, 관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체적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M은 유아기 때 엄마도 떠났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 조부도 떠났다. 아버지는 신체적 통증 때문에 병원에 자주 입원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 언제 아버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감, 유기불안이 매우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M이 할 수 있는 놀이가 무엇일까? 게임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버지도 무의식적인 미안함 때문에 M이 게임 현질을 하더라도 크게 문제시 하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심심해서 그랬어》라는 그림책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돌이는 엄마와 아빠가 밭에 일하러 가자 심심해서 놀이를 한다. 곧 토끼장, 닭장, 돼지우리, 외양간 문을 열어주면서 동물들이 논, 밭으로 나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재미있게 묘사한 내용이다. 이 그림책에는 저녁이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먹으면서 웃고, 이야기가 있는 따뜻함이 있다. 하지만 M이 아빠와 둘이서 살고 있는 시골집에는 적막함과 우울함, 그리고 불안이 가득하다. 

시골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M에게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니캇은 “아이에게 사랑하는 마음 없이 음식을 먹일 수 있지만 사랑이 없는 비인격적인 대우는 자율적인 인간으로서 아이를 탄생시킬 수 없다”고 했다. 

곧 상담자는 사랑(love)의 관계를 기반으로 M에게 다양한 놀이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위 그림책에 나오는 동물, 식물, 자연 등을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인 M에게 연령대에 맞는 좋은 학습 게임 등을 안내하는 것도 수반돼야 하며, 아버지 교육과 주변 유관기관과 연계하는 것도 병행돼야 한다. 

놀지 않는 어린이는 어린이가 아니고, 놀지 않는 어른도 자기 안에 있는 어린이를 영원히 실종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 억압과 아픔을 치유하고, 즐거움과 생명력을 통해 절망의 사슬들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하는 인간(bomo faber)이 아닌, 놀이하는 인간(bomo ludens)으로서의 삶을 순간순간 만들어가자.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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