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지정번호 없애고 이름 바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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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번호 없애고 이름 바꾸고’
  • 한기원 기자
  • 승인 2021.07.2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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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화 오해 없애려 지정번호 사실상 삭제…연내 마무리
소장처나 지정 연도 활용해 문화재 구분…홍성 보물 4점

우리나라 문화재 지정체계는 1962년 공포된 ‘문화재보호법’에 근간을 두고 운영돼 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 지정 일자가 1962년 12월 20일로 동일하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국가무형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가 있으며, 관리를 위해 지정 순서에 따라 번호를 부여했다. 이 같은 제도가 60년 만에 크게 바뀐다. 신호탄은 문화재를 서열화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지정번호를 사실상 폐지한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문화재 명칭을 변경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문화재청은 올해 초 주요 업무 계획을 발표하면서 문화재 지정번호는 관리용으로만 사용하고, 공문서·누리집·교과서·도로 표지판·문화재 안내판에는 쓰지 않는 쪽으로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 지정번호는 일제강점기에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이 제정되면서 부여되기 시작했다. 일제는 1934년 처음으로 문화재를 지정했는데, 당시 ‘보물 제1호’가 바로 ‘경성 남대문’이었다. 일제가 만든 지정체계는 광복 이후에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적용해 왔다. 따라서 ‘국보 제1호’라는 지위는 한양도성 정남문인 남대문, 즉 숭례문이 그대로 이어받았다.

건축물을 제외한 유형문화재를 국보와 보물로 나누고, 지정번호를 다는 행정 체계는 오늘날 일본에도 존재하고 있다. 다만 보물을 ‘중요문화재’로 부르고, 지정번호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문화재 지정번호 폐지 혹은 변경은 오랫동안 논의돼 왔던 ‘난제 중의 난제’였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국보 제1호’를 숭례문에서 다른 문화재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교체론을 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문화재 지정체계 중 가장 상위에 있고 번호도 제일 빠른 ‘국보 제1호’에 숭례문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안으로 거론된 문화재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훈민정음’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교체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고, 숭례문은 계속 ‘국보 제1호’를 유지했다. 화재로 인해 나무로 만든 문루(門樓)가 소실됐을 때도 국보 지정번호 논란이 일었으나, 제도는 바뀌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지정번호의 문제점이 거론될 때마다 어디까지나 관리를 위한 번호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누리집은 지정번호에 대해 “문화재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부여하는 행정상의 관리번호로, 문화재 명칭이 같은 경우 식별하는 역할을 한다”며 “문화재의 서열이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는 폐지 수순에 돌입했다. 이미 문화재청 누리집에서 지정문화재를 찾아보면 지정번호가 나오지 않는다. 무형문화재는 지난달 관련 시행규칙을 개정해 대외 서식에서 이미 지정번호를 삭제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보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지정번호라는 용어를 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며 “이르면 올 11월에 절차가 마무리돼 대외적으로는 지정번호가 사라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지정번호가 없어지면 일부 문화재들은 지정 명칭이 동일해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두 점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보통 ‘국보 제78호’와 ‘국보 제83호’로 구분해 왔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소장처나 지정 연도를 활용해 문화재를 구분할 수 있다”며 “지정번호 폐지로 인해 문화재 간에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여러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성에도 ‘신경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355호, 1963년 지정), ‘고산사 대웅전’(보물 제399호, 1963년 지정), ‘오관리 당간지주’(보물 제538호, 1971년 지정), ‘용봉사 영산회 괘불탱’(보물 제1262호, 1997년 지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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