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고리를 끊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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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고리를 끊는 노력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8.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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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相談)이란 무엇인가? 상(相)은 두 그루 나무가 눈을 맞대고 서로 마주한다는 뜻이고, 담(談)은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이 서로 말을 주고 받는다는 의미이다. 

Y씨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20대 전업주부이다. 18세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임신했지만 그 남자는 무직자였고, 소식은 단절됐다. 그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두 살 어린 남편은 온라인 게임을 통해서 만났는데, 남편 또한 부모님 이혼 후 할머니로부터 돌봄을 받았고, 청소년 시절에 첫 아이를 둔 이력이 있다. 현재 남편이 일용직, 단순직으로 돈을 벌지만 생활은 매우 불안정하다. 특히 잦은 알코올 섭취로 다툴 때마다 “이혼하자”, “당분간 떨어져 있자” 등 남편의 말은 상처로 다가와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자극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Y씨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는 과자를 사오겠다고 하면서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취중 상태에서 Y씨와 두 살 어린 동생을 자주 때렸고, 특히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Y씨를 더 미워했다. 친구도 없고, 공부에 대한 흥미도 없었지만 학교에 가지 않으면 동생의 안전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습관처럼 등교했고, 쉬는 시간이면 동생이 있는 교실에 가서 동생을 보살폈다. 소풍이나 운동회 날이면 동생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했고, 엄마를 대신해 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교 등교를 거부하고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고 소리 지르는 행동이 빈번해지자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은 Y씨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다. 그때 Y씨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당신들이야!”라고 소리 질렀다. 

부트(Booth, 1983)는 결혼 불안정성을 이혼이나 별거 상태에 이르지 않았지만 부부가 결혼을 해체하고자 하는 정서적, 행동적, 인지적 성향으로 정의했다. 뮬러와 포프(Mueller & Pope, 1977)는 부모 이혼을 경험한 자녀들이 배우자 선택 시 위험요인이 훨씬 높고, 결혼 불안정성이 높다고 했다. 또한 이혼한 자녀의 경우 부모의 관심과 보호가 약하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결혼하거나 결혼할 때 이미 임신한 상태이거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배우자 역할의 롤 모델(Role-model)이 없어서 결혼 불안정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애정과 보살핌, 감정과 행동을 존중하는 행동 등의 배우자 지지행동은 스트레스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고 건설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대처자원이 돼 결혼 안정성에 기여한다고 했다. 

Y씨는 부모님 이혼 후 자신이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공포감을 억압하고, 동생을 위해 실질적인 어머니 역할을 자처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지속된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우울과 불안 증상이 높아졌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분노의 감정이 극에 달해 폭발했다. 하지만 Y씨는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돌봄에 대한 책임감의 영향으로 연하 남편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계기가 됐고, 출산한 두 아이를 자신과 동생처럼 유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알코올 때문에 갈등이 증폭된 원가족 형태는 현 가족체계에서도 세대간 전이가 이뤄지고 있음이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Y씨는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유치원 때 엄마와 여동생이랑 함께 소풍을 간 날이에요”라고 말한다. 현실을 보면 결혼생활이 불안하고, 막막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행복한 순간을 자주 느끼도록 소소한 행복거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남편을 다독이고 용기를 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Y씨는 비자발적으로 상담실에 왔다. 그리고 상담에 대해 “얘기해도 후련하지 않고, 소용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상담이 종결될 때는 “Not bad(괜찮네)”라고 했다. 상담자와 눈 맞춤이 없었던 Y씨는 어느 순간부터 상담(相談)을 한 것이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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