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색 나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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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나팔꽃〉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1.09.1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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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26〉

종이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 지루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냥 그리기만 한 대유?’ 하고 불만을 드러내는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천으로 만든 가방에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가방 두 개를 나눠 드리고 예쁘게 그림을 그린 다음 하나는 그림도구를 넣어서 가지고 다니고 또 하나는 전시회를 할 때 내보이기로 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재미있게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종이에 그리던 소재를 그리셨는데 천위에 그렸을 때와는 그 느낌이 달랐습니다. 색감이 훨씬 부드럽고 은은했습니다. ‘천에는 색이 잘 칠해지지 않아서 몇 번씩 칠했노라.’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셨습니다. 천이 우툴두툴하니 펜이 매끄럽게 나가지는 않습니다. 천이 물감을 먹으니 선명하지도 않아 몇 번씩 칠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어하시고 다채롭게 그리셔서 그림도구들을 담아 어깨에 메고 다니셨습니다. 마치 학교에 오는 어린 학생들같이 즐거워하셨습니다. 

염정숙 어르신은 나팔꽃을 그리셨습니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릴 때도 나팔꽃을 그리셨는데 천으로 만든 가방에도 잉크색 나팔꽃을 그리셔서 나팔꽃을 좋아하는 나는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나팔꽃을 심으셨어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나팔꽃이 이쁘기는 헌디 옆에 것을 무쩐디게 혀. 감고 올라가.’ 옆의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래서 안 심는가?’ 나팔꽃 본지가 오래됐고 이제는 아예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아침마다 방긋방긋 웃던, 남색, 분홍색, 자주색 나팔꽃이 그립습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노래 부르던 그 시절에만 피던 꽃이 아니길 바랍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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