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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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질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1.11.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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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33〉

남자 어르신 네 분이 모이셨다. 두 분만을 예측했는데 네 분이 오시니 흐뭇했다. 장창주 어르신이 지난주에 못 오신 것은 깨 바심을 하느라 바쁘셨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대신 집에서 그림을 한 장 그려오셨는데 도리깨질하는 그림이다. 여쭈어 보지는 않았지만 장창주 어르신에게 도리깨는 지금도 유용한 도구일 것이다. 농촌 어르신들에게 전통적인 연장과 도구는 지금도 유효하고 요긴하다. 

장창주 어르신은 거친 숨소리를 내신다. 지난번에 말씀하실 때는 2차 접종을 하신 후에 나타난 증상이라고 하셨다. 옆에서 그림을 그리던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왜 그렇게 소리가 난댜?’ ‘이것 때문에 병원에 다녀. 어제도 큰 병원에 갔다 왔지’ 말씀을 무심하게 하셨다.

펜을 옆으로 뉘어 채색을 하시는데 불편해 보였다. 부드럽게 칠해지지 않고 거칠거칠하다. ‘펜을 세워서 칠해보세요’ 하니 ‘그렇게 하면 너무 진해져서’라고 하신다. 다 생각이 있으시다. 어느덧 뚝딱 그리시고 손을 놓으셨다. 

‘하늘이 왜 보라색인가요?’ 하고 여쭈어 보니 ‘해가 저서 그렇다’고 하신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어르신의 그림이 색다르면서도 정겹다. 해가 질 때까지 밭을 갈던 젊은 날들, 한창 일하던 때가 그리우신 걸까. 흙을 붉게 칠한 것도 석양에 물든 표현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인물 앞에 찍은 검은 점들은 흙탕물이 튄 것이라고 하신다. ‘아! 밭이 아니라 논을 가는 거군요!’ 

어둑어둑한 논 가운데를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소는 쟁기를 끌고 남자는 쟁기를 붙잡고 있다. 할 일은 남았는데 해는 넘어가 버렸다. 땡그랑땡그랑 소 방울 소리가 어두워지는 들판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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