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속의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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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의 동백꽃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3.05.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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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33〉

월산 2구 어르신들과 두 번째 만나는 날에 조금 일찍 마을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회관은 아직 잠겨있고 공중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햇살은 따사로운데 바람은 조금 거칠게 불었습니다. 3월의 날씨는 의례히 바람 불다 비 오고 덥다가 꽃샘추위까지 와 한바탕 정신을 빼놓곤 합니다. 

자세히 보니 마을회관 화단에 측백나무와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처마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측백나무는 새파랗게 물이 올랐고 동백나무엔 꽃이 몇 송이 피어 있습니다. 흠결 없이 고운 꽃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처마 덕분에 꽃송이가 온전한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 한분이 보행기를 밀고 오시면서 “웃날은 좋은데 바람이 부네요!” 하고 말을 걸어 주십니다. 하늘이 맑다는 말씀 같습니다. 얼마 전에 아드님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눈에 뵈는 것마다 아들로 보인다고도 하셨습니다. 가슴이 턱 막혀서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식을 잃은 어미라고 탄식하던 어느 젊은 엄마의 말도 생각났습니다.  

어르신들은 총 10분이 오셨습니다. 아이들같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하는 대로 잘 따라 하십니다. 대부분 80대 중반의 어르신들이었는데 해탈한 듯 고요한 눈빛이 내 마음의 짐까지 내려놓게 하였습니다. 어느 시인의 모친께서 83세에 한글공부를 시작하셨다는 글도 생각이 났습니다. 80이 넘어야 비로소 우리네 어머니들은 자신을 생각하게 되는 가 봅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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