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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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 김혜진 <홍성녹색당>
  • 승인 2023.10.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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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으로 사는 삶》이라는 표지를 보자마자 너무나도 강렬히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돈 없이도 사는 방법을! 도시에서 농촌으로 삶터를 옮겼지만 주거, 식비 등 농촌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슷하게 돈이 들었고 사고 싶은 물건, 하고 싶은 것 등 욕망은 끝이 없었다. 귀촌 5년 차에 나는 새삼 궁금했다. 돈 없이 사는 삶에 대해서. 아니 근데, 0원이라니 그게 정말 가능한 걸까?

2013년 워킹홀리데이로 영국 런던에 갔던 필자는 몇 개월 만에 해고를 통보받았다. 한 달 방값만 150만 원인데 수중에는 2개월도 버티기 힘든 돈만 남아 있었다.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런던에서 주거와 식비 등을 해결하려면 적어도 3개의 파트타임 일자리를 온종일 뛰어야 했다. 다른 워홀러들도 단지 ‘먹고 자려’ 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고 살아가는 현실에서 절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그 자체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기에, 찾은 답은 바로 ‘0원으로 살기 프로젝트’였다.

박정미/들녘/1만 9500원.

반자본주의? 환경운동? 절제를 통한 자기 수행? 단지 사용할 돈이 없었기에 돈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필자에게 사람들은 거창한 이유를 기대했다. 필자 박정미 씨는 그런 생각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단 세 가지로 추렸다. 잠잘 곳, 먹을 것, 교통수단. ‘필요한 것-돈-충족’이라는 사슬에서 ‘필요한 것-충족’으로 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그 첫 여정을 시작했다.

우프는 자원봉사자와 유기농 농장을 연결하는 상호교환 네트워크다. 농장에서 먹고 자며 일하면 세 가지 중 두 가지나 해결이 된다. 필자는 다양한 우프·친환경 공동체를 거치며 기존의 틀을 깨고 그야말로 새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동·식물을 직접 기르며 그 어떤 소비 없이 말 그대로 ‘자급자족’으로 준비하는 식사들, 두 손과 꾸준함과 자연재료면 충분한 집짓기, 최소한의 전기만을 사용하며 사는 ‘오래된 미래’의 삶의 방식, 도시의 향락과 소비문화가 아니어도 그 어떤 결핍 없이 ‘충분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 등. 처음엔 과학이 이렇게 발달한 시대에 이런 ‘퇴보적인’ 생활이 맞는지에 대해 우프 지기들과 뜨거운 토론을 벌이기도, 마음속으로 몰래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우프 생활을 하며 필자는 서서히 풍요는 무엇으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고민하기 시작한다.

0원 살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이동 수단은 바로 자전거와 히치하이킹이다. 그는 런던에 있는 자전거가게 열 곳에 메일을 보내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자전거 지원을 요청했다. 세상에 누가 공짜로 자전거를 내어줄까 하며 큰 기대 없이 시작했지만 한 자전거가게에서 자전거와 물통, 가방, 자물쇠, 장갑, 헬멧, 등 각종 용품까지 협찬받게 된다. 캐서린에 따르면 선행은 연쇄작용을 부르는 마법이다. 필자가 말하는 기적의 삶이 시작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소비 시스템으로부터 받은 세뇌를 마구 두드려 깨는 나날 속에서 문득 도시에서도 0원살이를 이어가 보겠다는 뜻을 세우게 되고, 그는 다시 런던으로 향한다. 그리고 급진적 주거운동인 보트살이와 스퀏팅에 동참하게 된다. 빈집 점거를 뜻하는 스퀏팅은 런던에서는 어느 한계 안에서는 합법적이기에 가난한 이들은 빈 건물을 찾아 거주지로 삼는다. 쫓겨나면 다른 빈집을 찾아 이동을 반복해야 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지만 체제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에겐 선택지가 없다. 건물주의 재산권과 소유권은 침해할 수 없는 권리 아닌가? 그의 의문에 무정부주의자인 제이콥은 이렇게 말한다. ‘거대 부동산 개발회사들에서 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많은 건물을 사들이고 이를 방치해 재개발 승인을 받으려 투기하고 이런 재산권 발휘는 약자들의 삶을 착취하고 공공의 선을 파괴한다. Everything for everyone! 모든 것은 모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지구의 동의 없이 가진 자만이 땅을 마음대로 소유하는 것, 재산권과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자의 마음속에도 자리 잡게 된다.

시골과 도시에서 각각 0원살이를 체험한 그는 많은 자연주의자, 반소비주의 투사들을 만나 소비가 사회문제와 연관돼있음을 깨닫는다. 처음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도 관심도 없었지만 어느새 ‘소비 제로’ 투쟁의 선봉에 서 있게 된다. 사지 않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책에는 0원살이 이야기뿐 아니라 먹거리 문제가 농업, 축산업, 어업 분야별로, 그리고 전염병,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에 대한 설명도 실려있다.

물론 이 0원살이는 매우 극단적인 삶의 방식이다. 그가 여행길에 만난 히피들조차 어느 정도의 지출은 하며 살아가기에 그의 프로젝트는 많은 격려와 대단하다는 감탄을 받았다. 차를 얻어 타고, 밥을 얻어먹고, 곳곳의 기적 같은 환대와 사랑을 경험했지만 어느 순간 그는 ‘돈 없이 살기’가 아니라 ‘남의 돈으로 살기’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감도 느꼈다. 받기만 하는 삶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소유물 어느 것도 절대적인 나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대단하게 여기지만, 도움을 받으며 사는 삶은 존재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또 다른 선행을 통해 우리 삶이 진화하게 한다고 말해준다. 

필자는 한국으로 돌아와 지리산에 있는 빈집을 구해 살고 있다. 음식은 채식으로 자연에서 난 것으로 되도록 자급한다. 옷은 대충 얻어 입는다. 물론 돈을 아예 거부하지는 않는다. 교통비, 반려동물의 먹이 등에 필요한 생활비는 주변에 품을 팔거나 하며 충분히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완전한 자급을 위한 환경을 이루는 것이 꿈이긴 하지만 무엇이든 억지로 바라거나 하지는 않는다. 현재에 만족하며 필요한 것은 때가 되면 저절로 찾아온다고 믿는다. 온 존재와 자연의 연결을 생각하며 외로움도 느끼지 않는다는 그는 이를 통해 무언가를 갈망하는 마음, 필요로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만족과 풍요 그리고 행복을 누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0원살이의 가장 큰 배움인 것이다.

책을 읽으며 참으로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은 아이도 없어서 더 자유로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소비로 점철된 사회에서,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두려움과 불안을 무릅쓰고 0원으로 살아본다는 것은 누구도 시도하기 힘든 일이다.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또한 자본주의적 소비와 욕망이란 것의 본질인 ‘끝도 없으며 행복을 얻을 수도 없다’는 것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욕망에 휘둘리다가도 그것을 헤아릴 수만 있다면 불안감도 덜어질 것이다. 그리고 사는 것은 꼭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만 해도 삶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만 같다. 뿌연 생각들이 조금 명확해지고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떠오른다. 정말 너에게 중요한 게 무엇이니? 너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것 같니? ‘0원으로 사는 삶’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책인 듯하다. 한 여성이 진리에 다가가고자 끝없이 질문하며 세계를 돌아다니고 얻은 지혜를 책 한 권으로 엿볼 수 있다.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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