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애틋한 농·어촌 정서로 다양한 노동과 삶을 호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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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애틋한 농·어촌 정서로 다양한 노동과 삶을 호명하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11.16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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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 시인의 시집 <사랑해요 바보몽땅>

1985년 무크지 ‘민중교육’에 소설 ‘비늘눈’을 발표하면서 소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3년 8개월간 해직을 당한 후 복직해 36년 동안 교직에 몸담은 강병철 시인이 2018년 유년의 애틋한 농·어촌 정서로 다양한 노동과 삶을 호명한 시집 <사랑해요 바보몽땅>을 출판사 ‘삶창’에서 ‘삶창시선’ 53번째로 펴냈다.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유년의 기록만을 통째로 출간하고 싶었는데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36년 훈장의 마감인 정년퇴임을 의식한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태생적 조급증 탓이 더 크다”고 밝혔듯, 교사생활 마감 무렵 펴낸 시집이다. 

시집에 대해 중도일보 한윤창 기자는 당시 관련 기사에서 “사실성을 드러내면서도 정감 어린 정서를 구축한 서술시를 창작하기란 쉽지 않다”며 “다수의 작품에서 시인은 대화와 서술을 무리 없이 연결하고 있다. 화자를 주체로 노출하지 않고 대화와 서술 사이에서 넓은 행간을 일궈낸다”고 기록했다.

또한 “대화체뿐 아니라 시골의 풍광을 섬세한 감성으로 포착하고 소소한 에피소드로 풀어내, 서술시의 덕목을 드러낸다. 비유와 상징 대신 곡진한 이야기로 애틋한 정서를 뚜렷하게 구축한다. 나긋나긋한 어조에 묘사와 서사가 적절히 혼합돼 어촌의 향토성이 효과적으로 강조됐다”면서 “작품을 통해 온정적 어조를 유지하면서도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장점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박명순 문학평론가는 ‘사랑과 바보, 그리고 기억의 힘’이란 제목의 시집 해설에서 “바닷가 갯내음이 폴폴 날린다. 세 살 이전의 기억들까지 날 것으로 담아내는 유년의 탐색이 60년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굽이굽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60~70년 대의 스산한 흐름으로 이웃의 다양한 얼굴들이 출렁인다. 그 얼굴은 요절과 버림받음, 그리고 떠남의 이미지로 형상화된다. 그 이미지의 연속성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기억의 마술이다”라며 “시인이 불러내는 인물들은 죽었거나, 또는 힘겹게 살면서 눈물을 훔치는 아픔의 이름들이다”라고 평했다.

“대전 복합터미널 남자 화장실/소변기 닦던 여자/대밭집 연실이가 틀림없다/손목 때리기 민화투 치다가/고구마 깎던 열여섯/감자 꽈리 불던 오리궁둥이/늦도록 오지 않던 사춘기/서늘한 아랫도리 흔들렸던가/염전 머슴 석숭이 입술 바치고/통통배 타고 대처로 떠났던/싸리 회초리 허리 낭창낭창/그 여자가 틀림없다 두근두근/바닥 건사하는 건강한 노동자구나/칭구야 방갑다 악수 청하니/여자의 눈빛 박꽃처럼 벌어지며/초승달 입술 환하게 터졌다”(시 ‘투명 인간의 입술’ 전문)

1957년 충남 서산 바닷가에서 태어난 시인은 숭전대 국문학과와 공주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삶의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고등학교 교사 근무 중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해직된 후 신문사와 출판사 등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 복직한 후 충남 탄천중, 공주여중, 공주중, 고북중, 서산여중, 유구중학교 등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시집 ‘유년일기’, ‘하이에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 ‘꽃이 눈물이다’, ‘호모중딩사피엔스’, ‘사랑해요 바보몽땅’, ‘다시 한판 붙자’, 소설집 ‘비늘눈’, ‘엄마의 장롱’, ‘초뻬이는 죽었다’, ‘나팔꽃’, ‘닭니’, ‘꽃 피는 부지깽이’, ‘토메이토와 포테이토’, ‘해루질’, 산문집 ‘선생님 울지 마세요’, ‘쓰뭉선생의 좌충우돌기’ 등 다수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대전충남지회장을 역임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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