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타면으로 맺어진 의형제의 끈끈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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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면으로 맺어진 의형제의 끈끈한 인연
  • 김현선 기자
  • 승인 2014.07.07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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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근 대표, 문명화 달인 (샹하이 손짜장)

수타면을 뽑기 위해 밀가루 반죽을 내려치는 순간, 수박만한 박이 산산조각 났다. ‘파워수타’로 잘 알려진 문명화(54)씨의 방송 모습이다. 수타로 박 하나를 깨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박 2개까지 너끈히 깨는 모습에 탄성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방송출연 이후 여기저기서 섭외 전화가 밀려왔다. ‘생활의 달인’부터 ‘생방송 투데이’, ‘TV특종’까지, 유명 프로그램에서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갔다.

그러나 정작 문 씨는 자신이 출연한 방송을 잘 보지 않는다. 힘들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TV에서 제 어린 시절을 재현한 적이 있는데, 힘들었던 지난 시절이 떠올라서 못 보겠더라구요.” 문 씨는 13살의 나이에 강원도 산골에서 가출을 감행했다. 배가 고파서였다. 강원도에서 포항까지 내려와 가지고 있는 돈도 다 떨어졌을 즈음, 그는 ‘마지막으로 맛있는 거나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중국집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들여놓았던 중국집 일이 그의 평생의 직업이 됐다.
17살이 되던 해 그는 서울로 올라와서야 처음으로 주방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접시닦이, 청소, 배달부터 시작해 주방에 들어가기까지 4년이 걸렸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중국집에서 기계가 아닌 수타 방식으로 면을 뽑았다. 자연스럽게 수타면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 씨는 TV에서 용의 수염처럼 하얗고 길다하여 이름 붙여진 ‘용수면’을 보게 되었다. 그날로 그는 화교출신의 사부에게서 용수면을 배웠다. 지금의 ‘달인’ 문명화를 있게 한 첫 시작이었다.

“거기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칼질하는 것부터 여러 가지 기술들이요. 그리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형님도 그곳에서 만났죠.” 현재 ‘샹하이 손짜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덕근(57) 대표가 바로 그 곳에서 만난 인연이다.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형님’, ‘동생’하는 둘의 모습에서 서로를 챙기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덕근 씨는 1년 후엔 가게를 동생인 문 씨에게 넘겨주겠다고 말한다. 친형제가 아님에도 이토록 서로를 챙기는 데에는 30여 년 동안 쌓아온 신뢰가 바탕이 됐다. 문 씨는 “2001년 인천에서 실패한 후 도시가 싫고, 사람이 무서워 철원까지 갔다”고 한다. 그때 손을 내밀어 준 게 이 씨다. “그때가 제가 의정부에 ‘샹하이 손짜장’이라는 상호명으로 1호점을 열었을 때였어요. 개업 멤버로 함께 하자고 했죠. 오픈 멤버로 6개월을 함께 했습니다.”

이후 문 씨는 안산에 가게를 내게 되었고, 수타면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악재가 문 씨를 덮쳤다. 3년 전, 중국집에 화재가 발생해 가게가 다 타버린 것이다. 당시 보험도 들지 않은 상태여서 손해배상으로 1년을 정신없이 보냈다.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간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이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홍성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으니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문 씨는 이 씨의 제안으로 홍성에 내려오게 됐다. 홍성에 내려온 지 이제 3개월 밖에 안됐지만 문 씨는 “홍성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싶다”고 말한다. 이 씨도 “동생이 아직 장가를 안 갔는데, 이제 이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며 허허 웃는다. 3년 전 홍성에 내려와 자리 잡은 이 씨도 홍성에 아주 정착할 계획이다.
“평생을 전국을 돌아다니며 중국집을 운영해 성공도 했고, 자식도 다 커서 대기업에 다녀요. 이제는 1년 후에 동생에게 가게를 넘겨주고 저는 은퇴해 농사도 짓고, 지역사회에 환원도 하면서 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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