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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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다
  • 편집국
  • 승인 2008.03.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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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이 반으로 접어들면서 계절은 장마를 앞세우며 여름으로 불쑥 들어섰다.
뙤약볕은 마치 달구어 놓은 가마솥 같이 열기가 사정없이 내리 뿜고 있다.
나무 이파리 하나 까닥하지 않는 정오, 점심을 차리려 텃밭에서 상추를 뜯고 있는데,
“날씨 한 번 오지게 덥네, 어휴 .....,” 더위를 탓하는 신음 섞인 소리를 무겁게 내 뱉으면서 윗집 아저씨가 논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는지 터덜터덜 맥이 다 빠진 모습으로 어깨를 있는 대로 늘어뜨리고 바지는 정강이까지 걷어 올린 채 허깨비 같은 걸음걸이다.
“아저씨 논에서 일하셨어요? 마침 은호아범도 집에 있는데 저희 집에서 점심 드세요. 상추랑 쌈장이 아주 맛있어요.”
큰소리로 점심을 초대하나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더니 몇 걸음을 더 놓은 후에 “내가 밥이 읍나 집이 읍나 왜 넘의 집이서 밥을 얻어먹어.”
생전 우리 집에서 밥을 한 번도 안 먹어 본 것처럼 씨불이면서 쳐다보지도 않은 채  기가 죽은 모습이다.
“아니 아저씨, 얻어먹으면 어때요. 우리가 남인가요? 이웃사촌이지, 전에는 늘 그렇게 살았었잖아요. 빨리 오세요.”그러나 대꾸 없이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못내 아쉽다.
나는 얼른 상추를  한 바구니 뜯고는 잽싸게 집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여보, 얼른 윗집으로 가서 아저씨를 데려와요, 지금 논에서 일하고 오는 것 같은데 점심을 함께 먹자고 하니 그냥 갔어요.”
수돗가에서 손을 씻던 남편은 내 말이 끝내기도 전에 일어나 마당을 질러 나갔다. 한참 후 윗집아저씨는 남편에게 손목이 잡힌 채 끌리다시피 들어오면서 
“이 사람아 왜 이러능가, 내가 밥이 읍서 집이 읍서, 넘의 집이서 밥이나 얻어먹구, 나 안사람 읍서두 이러키는 안살려구 허는디, 먹는것두 맘대루 뭇허구 뭇살것구머언.”
억지로 마루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밥상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오전 내내 일을 하여서 시장할 텐데 숟가락 들을 생각조차 안하고 딴전을 피우니 남편은 할 수 없는지 일어나서는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더니 “형님 지금 하신 말씀이 정말로 진심이시라면 이 소주나 한 잔 들고 가시죠.” 하면서 소주를 권하니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잔을 들어 비우고  남편은 다시 권하기를 두어 번하였다.

                               유애선(수필가. 홍성도서관 청하글쓰기교실 화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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