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들이 쌓여 있는 시골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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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들이 쌓여 있는 시골 빈집
  • 홍순영 주민기자
  • 승인 2019.04.2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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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마을방송을 통해서 마을 어르신의 부고소식이 전해졌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서 빈집이 하나 더 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유독 빈집이 많아 보인다. 아마도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이 대부분 빈집이라 그렇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10년 전 시골에 처음 이사 와서 빈집을 볼 때는 약간 으스스했다. 함석지붕은 망가져있고, 대문 틈사이로 보이는 마당에는 수풀이 우거져 작은 숲이 되었다. 장독대며 생활 살림은 조금씩 남아있고 천장에는 거미들이 부지런히 집을 지었다. 이런 빈집을 보고 살고 싶어서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빈집의 소유자는 쉽사리 빌려주거나 팔지 않았다. 사람 없는 마을에 이웃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빌려주면 좋으련만’, ‘산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팔면 좋으련만’ 하며 마음속으로 아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10년 정도 살다보니 빈집은 ‘쉽사리 빌려주거나 팔 수 있는 집’이 아니었다.

집에서 바로 보이는 빈집의 소유자는 집을 지었던 할아버지의 장손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함께 살았지만 아버지의 직장이 대전으로 옮겨지면서 그때부터 따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현재 경기도에서 살면서 일주일에 이틀은 꼭 이곳에 온다. 그는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나무를 돌보고 텃밭 농사를 짓는다. 농사를 지어서 가족들과 마을 이웃들과 나눈다. 덕분에 나도 많은 농산물을 얻어먹었다. 그는 이 집에서 살지는 못해도 ‘땅은 놀리면 안 되죠.’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가끔은 ‘언젠가는 와서 살아야죠.’라며 기약 없는 다짐을 말하기도 했다. 

자주 산책하는 길 끝에 위치한 빈집은 할아버지가 혼자 사셨던 모습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무도 살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빈집 앞에 차가 세워져 있었다. ‘무슨 일이지?’ 하고 궁금한 마음에 살펴보니 할아버지의 아들이 집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살지도 않는 집 주변을 청소하다니’ 이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집 건너 옆집에 사시던 할머니는 매일같이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곤 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돌아가셨고, 3대가 함께 살던 단란했던 가족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이 집 역시 사람이 살지 않지만 누군가가 찾아와 텃밭을 일군 흔적을 남기고 돌아간다.

사람이 살지 않아 빈집이 되었지만 누군가는 찾아와서 텃밭을 가꾸고, 집 주변을 정리한다. 이런 모습을 몇 년동안 지켜보면서 시골에서의 집은 그냥 단순한 자산가치의 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동안 도시에서 자란 나는, 집은 집세 올리면 이사 가야 하고 혹시 집을 사더라도 집값에 현혹되어 쉽게 팔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대대손손 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집이 고향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집은 곧 고향이며 뿌리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할아버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집에서 식구가 늘어난다. 그렇게 50년 이상 한집에서 가족들이 대를 이어 살아간다. 행복했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과거에 지나갔던 시간의 기억들이 집에 켜켜이 쌓여 간다.

빈집을 떠났던 그들은 언젠가는 진정 살기 위해 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더라도 집이 그 자리에 있기에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이 있는 것이다. 장손에 대한 의무로 집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내 삶의 뿌리를 꼭 지키고자 하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홍순영 주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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