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심었으니
상태바
콩을 심었으니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9.29 11: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만고(萬古)의 진리이다. 필자가 전지전능하다는 신(神)의 능력을 부정하고, 요행을 바라지 않으며, 기적을 믿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만고의 진리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종교에서 말하는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 죄를 없애 준다면 그것은 종교가 악행(惡行)을 보증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백성가운데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 많은 것은 나라의 불행이다’라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말처럼 복권명당이라는 웃지 못 할 관광코스가 생기고, 고학력실업자는 늘어만 가는데 노동인력이 모자라서 외국인들이 들어와야 하며, 부동산 투기와 다단계 등이 횡행하는 것은 바로 요행과 기적을 바라는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사회전반에 팽배해 있음을 말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안식처가 된다’는 종교가 사회에 대해 부정적 측면이 있다면 아마도 허망한 희망에 해당하는 요행과 기적을 바라는 심리를 만들어 내고, 종교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심어주어 민중을 더욱 어리석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앞서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것은 진리’라고 말했다. 이것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며, 인과(因果)가 분명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동의 한다. 그런데 인과를 포함하여 일체만물의 존재방식 즉, ‘상의성’이라는 연기(緣起)의 입장에서 설명하면 난색을 표현한다. 연기는 세 개의 갈대로 설명되어지는데,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땅위에 갈대가 서있기 위해서는 세 개의 갈대가 서로 의지해야 한다. 그런데 그 중 ‘하나’ 또는 ‘두 개’를 제거하게 되면 나머지 갈대도 함께 쓰러지듯이 일체 만물은 서로 의지해서 소멸과 생성을 반복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연기는 자신이 숨 쉬고 있는 이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서 ‘싫은 것이든’ ‘좋은 것이든’ 일정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말기에 가까워지면서 권력의 힘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그간의 실정과 측근비리들이 하나 둘 터지기 시작하고 있으며, 살리겠다는 경제는 바닥에 바닥을 치고 있다. 그래서 속단하기 어렵지만, 만에 하나 설령 ‘한나라당’이 재집권을 한다 해도 과거 김영삼 정부의 출범초기와 같은 대규모의 청문회가 벌어진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고서는 새로운 정부가 나아갈 수 있는 명분을 찾지 못할 만큼 현재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과로 이해하면 직접 관련된 사람들이 법적처벌을 받으면 어느 정도 일단락된다. 그런데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에 비례한다”는 말처럼 연기의 입장에서 보면 투표에서 누구를 지지했던 간에 권력을 탄생시킨 내 자신도 분명한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이 같은 연기적 입장에서의 사회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연·지연·혈연의 갈등이 조장되고, 사회전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쉽게 굴복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로 소모적 갈등과 투쟁이 전개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의 실정에 대해서 “과거 정부의 잘못이다”라고 발뺌하고, 불거지기 시작하는 청와대 측근들의 비리는 “과거 권력형 비리와는 다르다”는 발언처럼 분명한 잘못에도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청와대 핵심권력의 태도에서부터 힘든 일은 하지 않겠다며 노동을 회피하면서도 일자리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남의 탓(국가·정치·사회 등)으로 일관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지금 한창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를 시작으로 총선과 대선을 통해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마치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듯이 말이다. 그런데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콩이 되었든, 팥이 되었든, 흉년이든, 풍년이든 이미 선택했던 권력의 결과를 연기적 입장에서 거두어들이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권력의 이행과정에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하여 상대적으로 경제적 고통이 클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아픔을 줄여야 하며, 두 번째는 세상을 폭넓게 보는 연기적 사회 안목을 길러 정치와 권력 역시 공기와 물처럼 내가 살아가야 할 또 다른 사회적 환경으로서 개인의 노력으로부터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 번째는 개인들의 노력과 관심이 반드시 사회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은 물론, 그것을 반드시 실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중들의 인식변화는 정치와 자본에 대하여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권력의 힘이 만들어 내는 가시적 정의가 아니라 만고불변의 진리인 인과와 연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데 까지 이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민중의 인식변화 없이는 절대로 사회개혁은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