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성탄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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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성탄을 지나며…
  • 유요열 새홍성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11.12.29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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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 2011년 아기 예수가 탄생하시는 자리는 어떤 곳일까요?

2011년 아기 예수는, 좋은 대학을 가고 그래서 안정적 직업을 얻고 사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되어 끝없는 질주를 하는 우리 아이들 곁에 오십니다.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늦은 밤까지 학교로 학원으로 떠돌다 집에 돌아와서도 발 뻗고 쉬지 못하는, 전 지구 상 가장 비정상적 청소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땅의 청소년들 곁에 다가서십니다. 다가오셔서 아이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이시며, ‘너희 있는 모습 그대로 아름답구나!’ ‘참 삶이란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약한 이들을 돌보고 친구들과 어울려 사는데 있다’ 하십니다.

2011년 아기 예수는, 살인적 취업난에 시달리는 88만원 세대 젊은이들을 찾아오십니다. 루저가 되지 않으려고, 스펙 쌓기에 온 청춘의 힘을 다 쏟아 부었지만,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지치고 상한 젊은이들을 찾아가 그 마음을 위로하며 새로운 소명을 주십니다. 도전하고 저항하는 젊음의 특권을 잃고, 순응과 복종에 길들여 가는 젊은이를 향해 ‘청년아,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삶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은 하늘 뜻을 먼저 구하는 자들이 것이다’ 하십니다.

2011년 아기 예수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찢기고 파헤쳐진 산하, 그 속에 깃들어 살던 뭇 생명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십니다. 4대강 속도전으로 인해 죽어간 사람, 사라진 늪, 멸종된 물고기, 떠나간 철새, 그리고 생명의 기운을 점점 잃어 가는 강을 찾아오십니다. ‘신음하는 피조물을 위로하고 회복시키는 것이야말로 하늘 아버지를 믿는 이들의 마땅한 의무가 아니겠니!’ 하십니다.

2011년 아기 예수는, 가난을 떨쳐버리고 싶어 찾아온 이 땅에서, 따뜻한 환대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모욕당하고 상처받고 병신 되고 주검 되어 꽁꽁 얼어붙은 시린 가슴의 이주노동자들을 향하여 오십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대접을 하는 차별과 냉대가 당연시 되어 버린 각박한 이 사회에서 ‘이럴 순 없다’고 절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끓는 가슴에 다가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불합리와 불평등의 야만의 시간이 그들 영혼까지 다 삼켜버리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빨리 그들의 가슴을 부둥켜 안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2011년 아기 예수는, 민족애도 동포애도 사라지고, 인간에 대한 예의마저 자리 잡기 어렵게 되어 버린 허리 잘린 반도, 분단의 현장을 향하여 오십니다. 분단 60년에 대해 아무런 수치심도 부끄럼도 느낄 수 없는 무감각의 현실, 서로를 미워하는 것을 더욱 권장하고 부추기며 그것이 힘을 받는 이런 몰상식, 이런 반실용(反實用) 세상에, 그래도 평화만이 살 길임을 가르치기 위해 오십니다. 평화를 향한 용기를 잃지 말라고 깨우치기 위해 오십니다.

2011년 아기 예수는, 한미FTA로 큰 시름에 잠긴 농촌 농민 서민들을 찾아오십니다. 별 별 어려운 경제용어를 다 동원하고, 온갖 감언이설로 국민을 현혹하려 해도 한미FTA는 결국 거대 자본만의 이익일 뿐, 대부분 국민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 하십니다. 자본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고,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세상은 악마의 세상이라 하십니다. 예수는 그 어떤 시련과 고난도 모름지기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지지하려는 참 사람에게는 절망이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수상해도 연약한 이들을 위해 촛불을 밝히는 이들이 있는 한 희망은 결코 죽을 수 없다하시며 우리 곁에 오십니다.

2011년 성탄절에도, 희망의 불빛은 여전히 가물거리고 평화의 불꽃은 여전히 위태롭지만 아기 예수는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2011년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신 자리, 태어나셔야만 할 그 자리에 함께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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