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마을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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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 살아남기
  • 김옥선 칼럼위원
  • 승인 2020.03.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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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관내 25가구 이하 마을은 약 15여 곳이다. 마을지 제작에 참여하는 마을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20가구 이하의 작은 마을은 보여줄 것이 없다며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아쉬운 일이다. 일본에서는 사라지는 작은 마을을 가리켜 무라오샤메라고 부른다. ‘마을마지막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다. 마지막까지 살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마을은 소멸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선득하다.

서부면의 한 작은 마을은 집성촌이다. 1970년대만 해도 전체가구 36가구, 100여 명이 거주했던 마을은 현재 21가구, 32명이 거주하고 있다. 과거 마을주민들은 모두가 친인척 관계였다. 시누이의 동생, 사돈의 팔촌까지 마을 전체가 가족공동체였다. 가족공동체가 서서히 틈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무렵이다. 고령자들이 가족의 곁을 떠나고 외지인이 들어왔다. 외지인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마을주민들의 텃세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제주도에서 살다 온 한 외지인이 마을 끝자락에 집을 지을 당시, 전기와 수도를 끌어와야 했다. 주민들 모두 한마음으로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힘을 썼다. 제주도에서 이사를 한 이는 시간 나는 틈틈이 마을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어르신들도 그 마음이 고마워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꼭대기 집까지 밀차를 밀고 가져다준다.

집성촌에서 외지인을 받아들여주는 과정은 조금은 의외였다. 가족이 아닌 다른 이가 들어오면 으레 경계를 하기 마련이다. 별거 아닌 문제로 다툼도 하고, 언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오히려 이 작은 마을에서는 그들을 품어냈다.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늘 옆집과 앞집이 가족이었기 때문에 나누고, 돌보는 관계에 익숙했던 것이다.

마을은 단순히 집들이 모여 사는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고, 어른들이 마음 놓고 경제활동을 하며, 소외되지 않는 노인들이 없어야 하는 곳이 마을이다.

2007년에 발행된 조한혜정의 다시 마을이다를 오랜만에 다시 펼쳤다. 이 책에서 작가는 관계로서의 마을을 강조한다.
관계의 소중함을 아는 마을주민,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구촌의 주민으로 변신시킬 수 있을까? 자신을 소모성 건전지라 부르는 피곤에 찌든 직장인들을 어떻게 의미를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할 것이며, 마을을 위한 활동들, 주민의 삶에 필요한 가게, 노인들을 돌보는 느림의 일에 관여하게 할 수 있을까? 소외되지 않은 일자리 창출은 어느 정도 규모의 마을에서 가능할까?. 나는 그 방법론으로 작은 마을학교와 공동 식량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 주거를 제안한.”

작은 마을에서는 마을이 살아나려면 무조건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들어와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젊은 여성들이 들어오면 작은 마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이러한 시선은 여성을 가임 여성으로만 보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오히려 마을에 학교가 없으니 젊은 여성들이 마을을 떠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단순히 사람이 들어오기를 바라지만 말고 사람이 들어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는 정책만이 답은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그 어느 곳보다 돈독하고 밀접한 작은 마을에서는 사람과의 관계를 조직하기가 용이하다. 지혜로운 어른들, 책 읽는 농부, 음악 하는 할머니 등이 하나의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다. 애써 포장하거나 변명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조직하는 일, 작은 마을이 살아남는 출발점이다.

 

김옥선<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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