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야기 어떻게 정리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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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야기 어떻게 정리 할 것인가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9.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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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역사가 되고,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그렇다고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 모두가 역사와 전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무엇(교훈)을 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지위를 얻는다. 다시 말하면 시대에 따라 삶의 방식은 끝없이 바뀌어도 ‘먹고 산다’는 본질자체는 변하지 않음으로 역사, 전설 등은 교훈으로서 효력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뜻글자인 한자(漢字)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어떤 고만고만하고 유사한 것들이 있을 때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선택하여 기호로 나타낸다. 예를 들어 ‘아름다울 미美’를 파자하면 ‘큰 대大’와 ‘양 양羊’이다. 소과에 속하는 작은 동물인 양을 나타내는 ‘양羊자’는 본래 의미인 ‘양’과 함께 ‘상스럽다’ ‘착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어머니 뱃속의 아기집을 양막낭(羊膜囊)이라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물을 양수(羊水)라 한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양수에서 자라고 태어났다. 만약 글자그대로 해석하면 ‘인간은 양의 물에서 태어났다’는 이상한 말이 된다. 그렇다면 羊은 어떤 존재였기에 한자의 ‘상서로울 상祥’ ‘옳을 의義’ ‘거짓 양佯’ ‘기를 양養’ 등등 수많은 글자와 관련하고 있을까.

유대교도들이 속죄일에 제물로 바치는 양을 속죄양(贖罪羊) 또는 희생양(犧牲羊)이라 했듯이 고대 중국의 제사에서도 양을 잡아 올렸다. 이때 신에게 바치는 양은 그중에서 제일 크고 좋은 놈이 선택됐을 것은 분명할 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최고라고 불러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사를 지낸 후 고기를 치우침 없이 격에 맞게 잘 나누는 것이 올바른 행위이며 국가정치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미(美)자’에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고 해결해 준다는 신에 대한 제사와 생명의 근원인 먹을 것을 골고루 분배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라는 그들의 사상이 담겨있다. 이것을 나타내는 글자 인 ‘美’를 ‘아름다울 미美’라고 뒤치면서-‘뒤치다’는 번역을 뜻하는 우리말-어이없게도 ‘아름다움’이라는 우리말은 나타내고자 했던 본래의 뜻을 잃어버렸다. 

15세기 『석보상절』역시 ‘美’를 “아다씨니” 즉, ‘아답다’로 뒤쳤고 이때의 ‘아’는 ‘나’를 의미함으로서 ‘나답다’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해 최봉영은 개인을 뜻하는 ‘사사로울 사私’를 『훈몽자회』에서 ‘아름 사’라고 뒤쳤음에 근거하여 ‘아름’은 ‘알음알이’ ‘한 아름’ 등에서처럼 ‘나(개인)’를 뜻하는 말이다. 여기에 무엇이 온전히 완성되어 나타난 상태를 뜻하는 ‘답다’가 합쳐져서 ‘나(개인)의 완성된 모습이 세상의 기준에 합당하고 함께 어우러진 최상의 상태’를 ‘아름다움’이라 했다고 밝혔다. 

살펴보았듯이 한자의 ‘美’는 제사, 분배, 정치 등을 최고의 가치라고 보았던 중국인들의 생각이 반영된 글자인 반면, 우리말 ‘아름답다’는 ‘나라는 개인의 완성이 너로 이어지고 사회로 확산되며 이상적으로 어우러지고 서로 통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한국의 美’라는 단어로서는 자신을 끝임 없이 사회의 모범이 되도록 가꾸어가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나타 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본래 의미를 지금까지 잘 지켜 왔다면 ‘나만 잘났다’로 꾸미는 사람들에게 ‘아름답습니다’라는 말 보다는 ‘도도하게 꾸미셨군요’라고 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최근 우리 홍성뿐만 아니라 많은 지자체들이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의 역사, 설화’ 등을 채록하거나 조사하여 책으로 펴내고 있다. TV가 보편화되면서 동네이야기가 사라진 지금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수집한 이야기가 전문가들의 검증이나 깊은 논의 없이 ‘있는 그대로’ ‘들은 대로’라는 입장만으로 출판되어 권위를 가지게 되면 ‘美자’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운 조언을 피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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