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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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다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4.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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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애정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행위이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어쩌면 아이의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때로 부모의 사랑은 소유와 조건적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게 된다.

S는 홈스쿨링(Home Schooling)으로 공부하는 18세 여학생이다. 부모의 통제와 간섭, 그리고 조건적인 양육태도에 가출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로 끝났다. 건조한 일상에서는 웃을 일이 없었지만 판타지 소설과 TV드라마, 소드 아트 온라인(Sword Art Online : SAO) 등의 세계에 들어가면 웃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러다보니 시청 시간이 계속 늘어났고, 이를 보다 못한 부모님의 염려로 상담실에 의뢰됐다.

S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잦은 왕따를 경험하면서 학교 적응이 원활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를 자퇴한 후 교육방송 등을 통해서 홈스쿨링을 했다. 인터넷으로 만난 선생님은 매우 친절했다. 어느 날 수업 중 우연찮게 선생님이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그 단어에 대해서 S가 질문하자 얼버무리셨다. S는 인터넷 검색창에 ○○를 입력했더니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 관련 자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신기함과 놀람이 있었지만 신세계를 발견한 사람처럼 가족들 몰래 성인 콘텐츠를 시청하게 됐다. 늘어난 시청 시간과 잦은 접속으로 PC에 컴퓨터 바이러스가 감염됐고, 이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되면서 집안 분위기는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것처럼 침울함으로 초토화 됐다. 이때부터 부모님은 S에게 더 강한 요구 조건을 제시했고, 그 조건들을 수행했을 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일거수 일투족 CCTV가 따라다니는 것처럼 감시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인간중심이론을 창시한 칼 로저스(Carl R. Rogers, 1902-1987)는 수용(acceptance)과 귀히 여김(prizing)이 무조건적 긍정적 배려와 동일한 것이라고 제안했다. 만일 한 사람을 수용한다면 그 인격(person)을 수용한 것이지 그의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인격을 귀히 여긴다면 우리는 그에게 무조건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며, 내면적 경험의 전 영역을 인식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S는 지속적인 가족들의 감시와 통제가 자신을 주눅 들게 만드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S의 부모는 딸을 감시하고 조건부로 일상을 요청하는 이유는 건강한 사회인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S는 혼란한 시기를 보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제한됐고, 부모의 행동이 자기 생활의 전 영역에 침투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오히려 기쁘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아픈 사람이 되면 부모님께서 자신을 비난하고 통제하기 보다는 오히려 수용해주시고, 보듬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발달 과정이나 상담 관계에서 긍정적인 대우를 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이의 일상생활에서 의미 있는 사람들(부모, 교사 등)은 사랑과 수용을 주기도 하지만 이를 보류함으로써 아이가 혼란스러움을 갖게 하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아이는 부모나 선생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무시하고 그들이 기뻐하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치 설정 과정에서 S의 역할은 유린당하게 되며, 결국 조건적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가족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필요가 있다. 무조건적 사랑을 받고 성장하는 아이는 자신을 존경하고 수용하며, 자신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부족함도 사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볼 수 있을 때, 타인도 사랑하고 친절을 베풀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로저스는 심리치료의 과제는 올바른 토양이 제공되지 못해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는 내담자들을 건설, 혹은 재건설하거나 조종하거나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촉진하는 것이며,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하고 이미 그 사람 안에 있었던 것들을 풀어놓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즈음 로저스의 이야기가 되새김질 되는 순간이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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