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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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전만성 <미술작가>
  • 승인 2021.05.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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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그림그리기 〈11〉

하얀 도화지 가득히 꽃이 그려진 것을 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린 꽃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늘에는 나비도 서너 마리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꽃이 빽빽이 그려져 있는데다가 잔손질의 흔적과 비슷비슷한 색채가 어우러져 꽃이 웅성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에 휩쓸리며 서걱서걱 소리를 내는 것도 같았습니다. 

이송연(69) 할머니는 처음부터 꽃을 그리겠다. 하셨습니다. 첫째 날, 둘째 날도 꽃을 그리셨고  넷째 날도 꽃을 그리셨습니다. 셋째 날은 어렸을 때 경험했던 바닷가라며 게와 조개, 소라와 고동, 따개비가 붙은 바위 같은 것을 도화지 가득 그리셨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신 것처럼 망설이지 않고 쓱쓱 그리셨습니다. 넷째 날에 그린 〈코스모스〉는 바람과 꽃들의 웅성거림 같은 것이 느껴질 만큼 생동감 있게 그리셨습니다. 

이송연 할머니는 내가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나를 알아보고 감격해 하셨습니다. “어디 살던 누구지?” 하시며 익히 듣던 목소리와 말투로 반겨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늘 부르시던 이름을 대며 “내가 그 사람 엄마여!” 하셨습니다. 바로 내가 살던, 내 고향 남문동 마을에 와 있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송연 할머니는 그림 그리러 다니시는 내내 내가 불편하지 않을까 마음을 쓰셨습니다. 분위기를 가라앉지 않게 하려고 큰 목소리로 먼저 반응을 하셨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림 그리러 나오시도록 보이지 않게 독려하셨습니다. 먹을 것을 갖다 놓으며 너스레 하시는 양은 꼭 우리 누나 같아서 그 옛날  옛집에 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 고향 남문동에 깊이 뿌리를 박은 이송연 할머니가 계시는 한 나는 언제든 고향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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