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냥 건강하게 지내다 가는 게 꿈이야” - 이규복 씨(홍성읍·7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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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냥 건강하게 지내다 가는 게 꿈이야” - 이규복 씨(홍성읍·71세)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2.03.12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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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바라본 홍성 - 독거노인과 함께한 하루②

버스타고 홍성-홍북 출퇴근
퇴근하면 바둑 두거나 산책

노인일자리사업의 순기능
건강유지와 활력에 도움돼
“6월 17일 이후엔 또 몰라…”

 

이규복 씨(71)는 홍성읍 남장리의 조그만 셋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다. 지난 3일 독거노인 이규복 씨를 만나 그의 일과에 맞춰 하루를 동행해봤다.

“못된 짓은 안했는데 젊어서 무위도식을 오래 했어… 그렇다고 건달 노릇을 제대로 헌 것도 아니고….” 

과거를 말하는 이 씨의 얼굴은 지난날에 대한 회한 때문인지 조금은 격앙돼 보였다. “건설회사 다니던 사촌 형이 내가 하도 놀고먹으니까 건설현장 시험실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 거기 취직해서 한 3년 있었나…. 이후에는 예산 농공단지 화장품 공장에도 있었고, 수원으로 올라가서 아파트 경비 일을 한 10년 했지.”

이 씨는 아파트 경비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홍성으로 귀촌했다. 고향인 예산과 가깝기도 했고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이 곳 홍성에서 새 일을 구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까지는 홍성읍의 한 중학교에서 체온측정 업무를 담당했다. 올해는 다소 거리가 있는 홍북읍 노은리의 성삼문 유허지로 출퇴근하며 청소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은 군청에서 관리하는 것 같은데 6월 17일까지만 할 수 있어. 그 이후에는 또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나마 노령연금하고 국민연금하고 조금 나오는 게 있어서…. 버스타고 운동 삼아 살살 걸어갔다 오니까 조금 멀어도 참 괜찮은 일인데….” 

이 씨의 집에는 교차로신문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구인공고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혹시나 아파트 경비 자리가 나왔나 확인하지. 요즘은 마땅한 일자리 공고도 잘 안 올라와서 오늘의 운세랑 칼럼 읽는 재미로 보고 있어.”   

이 씨는 늘 하던 대로 스스로 밥솥에서 밥을 푸고 아침 겸 점심 밥상을 차렸다. 식탁 한 구석에 놓인 인테리어용 화분은 삭막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아침 겸 점심으로 이렇게 그냥 있는 거 먹어.” 식사를 마친 그는 간단한 세안과 함께 면도를 했다. “노인 일자리 나가보니까 어떻게 된 게 내가 젤 어리더라고. 그래서 매일 면도하는 게 습관이 됐지.”

이 씨의 집에서 장군상 오거리 인근 버스 정류장까지는 도보로 20분 정도가 걸렸다. “하루에 교통비 3000원이랑 식사비 5000원이 나와. 참 고맙지. 생활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따라 길을 한참 돌아갔고 졸음이 쏟아질  때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 씨가 내린 버스 정류장에서 성삼문 유허지까지는 또 20분 정도가 소요됐다. 그는 일터에 도착하자마자 변기 위에 모자와 가방을 올려놓고, 점퍼를 벗어 화장실에 마련해둔 옷걸이에 걸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대걸레를 깨끗이 빨았다. 구석구석 바닥청소를 하고 쓰레기통도 비웠다.  

청소를 마친 이 씨는 노은리 고택에 다녀오자고 말했다. 이날 오후는 화창했고 미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그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오랜만이었는지 걷는 동안 두서없이 이런 저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내가 바둑게임을 좋아하는데 그게 머리를 많이 쓰는 거라 담배가 늘더라고 그래서 한 1년 전에 담배를 끊었어. 솔직히 돈이 없어서 끊었지…. 수입은 많지 않는데 하루 2갑 씩 피웠으니께. 하루에 돈 만 원씩은 도저히 안되겠어서. 요즘엔 퇴근하면 컴퓨터로 바둑 두거나 책을 읽어. 한다는 게 뭐 동네 두 바퀴 돌고 그런 거 말곤 없지.”

문득 이 씨의 오래전 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이 씨가 말했다. “학교 다닐 때 글짓기로 상도 받아보고 친구들 연애편지는 숱하게 대필해줬지. 이제는 그냥 건강하게 지내다 가는 게 꿈이야.” 그는 오후 4시 무렵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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