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억제 사회관여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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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억제 사회관여 장애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4.2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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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여학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폭력에 노출됐고, 중학교 때는 심해지는 부모의 폭력을 견딜 수 없어 집과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출해 경찰서와 쉼터를 드나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학교를 다녔지만 공부에 흥미도 없고, 친구도 없는 학교생활에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후 S에게 나타난 다양한 문제점 때문에 지역사회 기관들이 통합사례관리 솔루션(solution) 회의를 갖게 됐다.

S는 하쿠나 라이브(HAKUNA)로 알게 된 Q오빠와 20일째 교제하면서 덧없이 행복함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Q는 음식 배달을 하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S와 통화를 자주하고, 어떤 때는 먼저 S에게 전화를 한다. 두 사람이 교제하기로 약속하기 전 Q는 렌트 카를 빌려 S에게 바닷가 구경도 시켜주고,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주는 고마운 오빠이다.

S가 Q를 만나기 직전까지는 W오빠와 교제했다. 250여 일 사귄 W오빠는 출근 전이나 퇴근 후, 밤 9시까지만 통화가 가능했다. 언제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격주로 만났을 때 신체적 접촉에서 오는 즐거움으로 그 순간을 견딜 수 있었다. S는 Q에 대해서 “오빠는 제가 좋고, 이쁘고, 착하고, 같이 있으면 좋대요.” “저는 오빠와 싸우더라도 절대로 못 헤어져요.” “이 세상에서 제 편이 되어준 유일한 사람이예요.” “저는 오빠를 버릴 수 없어요.” “오빠는 포근해요. 오빠가 저를 껴안아주면 심장소리가 들려서 너무 좋아요.”라고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하지만 어느 날, “가끔 오빠가 서운하게 할 때면 바람 피우고 싶어요.” “내가 바람만 안 피우면 오빠랑 관계는 유지될 거예요.”라는 등의 무분별한 충동적 행동을 표현하기도 했다.

탈억제 사회관여 장애(Disinhibited Social Engagement Disorder)는 양육자와의 애착 외상을 경험한 아동이 낯선 성인에게 주저 없이 과도한 친밀감을 표현하며 접근하는 경우를 뜻한다. 보통 탈억제 사회관여 장애를 지닌 아동은 애착 대상을 여러 번 상실하거나 여러 양육자가 교체되는 경험을 함으로써 양육자와 일관성 있게 지속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보호시설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다가 입양된 아동들도 입양 후 정서적 억제나 철수 행동보다 무분별한 탈억제 행동을 나타내는 경향이 높다. 이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외로움과 두려움을 억압하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낯선 사람에게 과도한 친밀감을 나타내면서 가짜위안(pseudo-comfort)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S는 가출 후 J지역 쉼터에서 생활할 때 의식주를 제공받았지만, 잠자리에 누우면 ‘내 인생은 왜 이런가?’ 싶어서 밤마다 울었었다. 그때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토끼, 다람쥐, 모자장수와 함께 몸을 줄이거나 쭉쭉 늘려주는 작은 병의 액체를 마신 후 여기저기 여행하는 상상을 하다보면 잠시나마 행복했다. 하지만 밝은 낮이 되고 사람들은 목적지를 향해서 어디론가 움직이지만 자신은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가입해서 활동하는 하쿠나 라이브(HAKUNA) 방송을 즐겨 시청하게 됐고, 통역 앱인 파파고로 번역을 하면서 외국인들과도 채팅을 했다. 특히 우리나라 남성이 보내온 친밀한 문자는 현실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경우가 반복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여러 기관에서 통합적으로 지원받은 S는 얼굴 표정과 옷차림이 달라졌다. 상담 초기에는 무표정한 얼굴과 헝크러진 머리, 크롭티(cropped T-shirts)를 즐겨 입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표정에 미소가 생겼고, 옷차림이나 청결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여러 기관의 협력으로 부모님이 생활하고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됐으며, 그곳에서 부모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R기관에 연계도 이뤄졌다. 무엇보다도 집에는 S를 반기는 강아지 똘이가 있는데, 똘이의 대소변이나 서로의 건강을 위해 함께 산책하는 것도 약속했고, G고등학교에 입학해 학교생활을 시작한 결단력도 공감하고 칭찬했다.

‘…아무리 좋아해도 받아주지 않을 거면서 이렇게 나 아파해도 답해주지 않을 거면서, 사랑을 가르쳐주고 나 혼자 뒀으면서…(중략) 혼자 두지 말아 줘’는 GUMI의 마음탓(心做し) 가사 일부이다. 노래 가사처럼 사람으로 인해 기대감이 채워지지 않더라도 S가 많은 남성들과 피상적인 관계를 맺거나 무분별한 성적 관계를 맺지 않기를 희망한다. 보통 탈억제 사회 관련 장애는 부주의나 과잉행동과 매우 관련성이 높기에 양육 환경이 향상돼도 증상이 잘 개선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 관련 기관들이 지속적인 통합사례관리를 통해 문제적 증상을 조금이나마 소거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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