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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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 김혜진 <홍성녹색당>
  • 승인 2024.03.0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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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은 2005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페미니즘을 소개한 바 있다. 페미니즘은 차이와 차별을 넘어 누구도 배재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여성의 언어로 사회를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피해자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한국은 이른바 ‘페미니즘 대중화’의 시대를 맞이했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나오는가 하면 ‘숏커트’를 해도 공격을 받고, ‘손가락’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여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개선되기는커녕 ‘페미니즘’ 혹은 ‘여성’이란 단어는 금기가 되다 못해 조롱을 받는 처지다. 우리는 유래 없는 반페미니즘적 반격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아수라의 한가운데 정희진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펴냈다. 여성들의 인식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남성들과 한국 사회에 대항해 ‘그들이 못 알아듣는 새로운 언어로 말하자’고 다시 한번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변화된 상황에서 기존 논쟁 구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것이 논쟁의 불씨가 되기를 희망한다. 피해자 중심주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이 피해를 증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등장한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인데, 저자는 이를 꾸준히 비판하고 있다. 얼핏 여성의 지위를 보장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성이기 때문에 옹호해야 한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피해는 ‘여성’의 정체성이 아니며 이런 관점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면 진상규명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만연한 여성 폭력에 대한 인식전환과 대책이 필요할 뿐이라고 한다. 
 

정희진/교양인/1만 8000원.

결혼기피, 저출산 문제를 보는 정희진의 관점 또한 새롭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했지만 이것은 일과 가사노동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의 과잉 노동’을 상징할 뿐, 여성 지위 상승과 무관하다. 성역할에 대한 남녀 의식의 불균형이 초래한 결과이기에, ‘우먼 프렌들리’ 정책보다 그것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질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폭력 범죄에서 피해자는 ‘얼마나 목숨 걸고 저항했는지, 거절이 단호하고 절절했는지, 얼마나 피해자다웠는지’ 최대한 증명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 현실을 뒤집기 위해서다. 미투 운동에서 보듯 당연한 범죄 신고가 일대 사건이 되는 우리 사회와 여성의 이러한 현실을 제발 똑바로 보자고 책은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경쟁과 불안은 외면한 채 성차별, 계급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둔갑시켜 정쟁에 이용하기 바쁘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정희진에 따르면 반격이라기 보단 ‘무지’에 가깝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공격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초점을 옮기는 일이다. 여성의 지위가 ‘그래도 예전보단 나아졌다.’는 말은 맞지 않으며 여성의 지위는 당대 남성과 비교해야 한다는 것처럼, 당연한 주장이지만 아직은 낯선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드리 로드의 ‘주인의 도구로 주인의 집을 부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페미니즘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언어로 사용하길 주문한다. 여기에서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옹호하는 주장이 아니며 성별 구분 없이 상황과 맥락 안에서 판단 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학문이라고 내내 강조한다. 여성이라고 다 같지 않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황에 맞는 사유의 힘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페미니즘을 사회 현상 파악을 위한 주요한 대안적 인식론으로 삼아야 한다고, 20년 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부터 줄기차게 제안하고 있다.

알고 보니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완전히 뒤집혀진 운동장이었고, 그걸 다시 뒤집어보아야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남녀를 뒤바꾸어 성별 권력 관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20세기의 여성주의 고전 소설에서 썼던 어법을 소환해야만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다니. 허탈할 지경이다. 예상컨대, ‘다시’가 아니라 언제까지 반복될지 모를 ‘페미니즘의 도전’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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