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만들기’의 진짜 이름, ‘관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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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들기’의 진짜 이름, ‘관계 만들기’
  • 신은미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5.16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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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장곡면 가송1리 환경교육을 맡게 된 신은미라고 합니다. 5월부터 10월까지 총 다섯 번 마을분들을 찾아뵙고 강의도 하고 마을을 깨끗하게 가꾸는 활동도 지원해드리는 ‘짝꿍’이에요.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니, 못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또 나눠주시고 중간에라도 궁금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농촌마을에서도 받아야 하는 교육이 넘쳐나는 시대라, ‘환경교육’ 역시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다섯 번’ 오는 ‘짝꿍’이라는 이야기에 마을분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강의 말미에는 자연스럽게 쓰레기 처리의 어려움, 마을 소각장에 대한 고민, 오래된 물건들을 모아 마을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바람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마을자랑까지 이어졌다. 

지난 10년간 환경교육을 하면서 4회차 이상 교육을 진행한 마을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섯 번’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강사님들은 ‘다섯 번 교육 가는 내(가 맡은) 마을이니까’라며 강의 전에 마을을 답사하고 이장님, 부녀회장님을 뵙기도 한다. 교육을 넘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다. 또한 이 ‘관계’가 교육의 질과 성과를 결정할 것이다. 지난 5월 1일, 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의 ‘공동체 공익활동 협약 사업’이 시작됐다. 홍성군 10개 마을과 10명의 환경강사가 매칭됐고, 지역의 여러 기관·단체가 역할을 맡아 함께한다. 강사들은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이나 홍성여성농업인센터, 장곡면주민자치회, 대한적십자사 홍성지구협의회 등에서 활동하는 현장경험이 풍부하고 공익성을 담보하는 활동가들이다. 

다섯 번의 만남에서는 강의뿐 아니라 가전제품 및 대형폐기물 처리, 분리배출 등 활동이 병행된다. 뭉뚱그린 쓰레기 문제가 아니라, 농촌지역의 현실을 반영한 구체적인 내용을 주제로 삼기 때문에 주민들도 ‘일방적 안내’로 받아들이지 않고 관심을 보인다. 교육과 활동을 통해 한순간 환해지는 마을 풍경도 있겠지만, 당장의 변화보다는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해보자는데 강사들 모두 마음을 모았다. 

가령 가전제품은 국가가 무상으로 수거하고 있어 전화로 예약하면 가져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처리해본 적이 없어 수십 년째 고장난 가전제품을 쌓아놓고 사는 게 현실이다. 종량제봉투에 담기지 않는 대형폐기물은 2022년부터 스티커 부착이 아니라 방문수거로 바뀌었는데, 이것 역시 잘 모르는 주민이 많고 알아도 익숙지 않아 이용하지 않는다. 읍내 사는 젊은 사람들은 가전제품은 인터넷 예약을 통해, 대형폐기물은 모바일 앱 ‘빼기’를 통해 비교적 손쉽게 폐기물을 배출하지만, 고령의 어르신들은 온라인 접근이 오히려 어렵다. 마을에서 함께 수거차량을 불러보는 경험은 케케묵은 쓰레기를 치우는 후련함과 함께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사할 것이다. ‘짝꿍 강사’들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알려주지만 다음 번 만남에서 지난 번 쓰레기가 잘 수거되었는지, 다른 불편함은 없었는지도 확인한다.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은 정리해 행정에 전달하려고 한다. 강사 없이도 주민들 스스로 수거차량을 부를 수 있도록 큼지막한 안내문도 붙여두고, 그때 가서도 어려우면 연락하시라고 당부할 것이다. 

교육을 마치고 마을회관 게시판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나오려니, 마을총무님이 본인 이름과 번호를 알려주신다. 이 마을과의 소중한 인연이 시작됐음을 감지했다. ‘관계’를 전제로 한 교육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물건도 만남도 ‘일회용’이 아닐 때 비로소 소중한 것이 된다.
 

신은미<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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