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그루 율(律) 대표
칼럼·독자위원
6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달에 떠오르는 홍성의 현충시설은 어디인가? 순국선열을 기리자면, 홍성 홍주의사총을 비롯해 결성 만해한용운선생생가지, 갈산 백야김좌진장군생가지, 서부 추양사, 금마·홍동·장곡 등 삼일운동 유적지 등이 순국선열을 기리는 장소이다.
‘홍성 홍주의사총’은 을미년과 병오년 두 차례 일어난 홍주항일의병 900여 명 이상이 묻힌 홍주의병의 묘소로 홍성군 홍성읍 의사로 79에 위치해 있다.
1973년 충청남도기념물로 지정됐다가, 2001년 다시 국가유산 사적 제431호로 지정됐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홍주성에서 일본군에 대항해 싸우다 순국한 의병 수백 명의 유해가 묻혔다. 1949년 홍성군수 박주철과 경찰서장 박헌교가 부하직원들과 함께 나무를 심다가 의외로 많은 유골을 발견했는데, 홍성군민의 정성으로 분묘를 조성했다.
홍주의사총 묘소는 입구 정면 중앙에 한 단 높게 마련돼 있고 그 앞으로 상석과 함께 ‘병오순란의병장사공묘비’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1959년 정인보기, 심상직서의 비문이 그 내용을 잘 말해준다. 사당인 창의사에는 이때 희생된 900의사의 위패를 봉안했다. 그 위로 올라가면 홍주의병기념탑에 서 있다.
홍주항일의병은 1895년(을미)과 1906년(병오)의 2차례 전개된 항일의병 활동을 말한다. 제1차 의병은 정부의 개화정책과 일제의 침략 행위에 반대해 단발령 공포 직후 봉기했다. 선구적 의병 봉기는 척왜분위기를 전국적으로 고조시켜 을미의병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다. 제2차 의병은 1906년의 홍주성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 역시 수백 명이 산화해 의병전쟁 사상 단일 전투로는 최대의 희생자를 내어 그 뒤 전국적인 의병항쟁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정부에서 의병들의 희생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법정기념일로 제정한 6월 1일 ‘의병의 날’을 맞아 올해도 ‘병오 홍주의병 장사공 순위 제118주년 제향’이 홍주의사총에서 거행됐다.
이날 오전 홍성군과 홍주의병유족회가 주최하고 우리는 골목대장이 주관한 홍주의병 추모제향에는 홍주의병유족회를 비롯해 이용록 홍성군수, 홍주향교 유림, 보훈단체와 홍성중학교 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제향은 추모사, 헌화와 분향, 묘역참배 순으로 진행됐다.
홍주의병 추모제향인 ‘병오 홍주의병 장사공 순위 제118주년 제향’은 무사히 거행됐지만, 뭔가 진하게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무얼까?
지역신문 사설에서도 밝혔듯이 홍성군수와 홍주의병유족회, 홍주향교 유림, 학생 외에는 대부분의 지역사회 기관사회단체장과 단체에서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인즉 ‘홍주의병 추모제향은 이제 크게 관심 안 가고 의례적인 제향 행사’라는 인식이 홍성지역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유이다. 그나마 지난해까지 홍성군역사문화시설관리사업소에 주관해 최소한 인원 동원이 이뤄졌지만, 올해 민간단체에 맡기면서 인원 동원은 고사하고 제향의 관심도는 더욱 지역사회에서 멀어졌다.
1906년(병오)과 1907년(정미) 의병인 격전지인 소난지도 의병의 당진시나 1907년(정미) 의병의 격전지인 양평군 등은 의병기념사업회가 만들어져 있어 의병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추모제 및 기념식을 열고 있다. 홍성군에서도 2020년 제10회 대한민국 의병의 날 행사를 주관해 치렀지만 코로나19 확산 여파 등으로 기념식만 간단히 치르고 말았다.
오히려 6월 6일 현충일에 거행된 충령사 제향은 1000여 명 이상 참석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안보의 중요성 측면에서일까? 아니면 지역사회의 관심의 차이에서일까?
홍주항일의병의 최초 의병장이자 파리장서의 호서유림 대표인 홍성 독립운동사의 상징적 인물인 지산 김복한 선생 100주기 제향에도 지역사회가 무관심한 것처럼, 이번 홍주의병 추모제향에도 무관심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를 일이다.
다가오는 내년 ‘병오 홍주의병 장사공 순위 제118주년 제향’부터는 지역의 대표 추모기념식으로 삼아 홍주의병기념사업회의 구성 발족이 시급하고, 제향에만 급급한 의병의 날 행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예산이 투입되는 정식 홍주항일의병 추모제 또는 기념식이 거행돼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6월 13일 충남의병기념관 홍성군민간유치위원회가 해단식을 갖고 정식 해산했다. 성과라고 해봐야 서명 3만 명, 홍주의병서화전, 학술대회, 인문학콘서트, 다큐 제작과 인터뷰 등이 전부다. 결국 내포신도시 충남보훈관 인근으로 의병기념관 유치 결론이 났고, 의병기념관 명칭은 (가칭)충남의병기념관이다. 그렇다면 홍주의병의 상징성은 어디서 찾는가? 아무리 충남 또는 충청지역 대표 의병기념관이라 할지라도 그 명칭은 의병 투쟁의 상징성이 담긴 ‘(가칭)홍주의병기념관’이라고 해야 맞다. 이제부터 싸워야 할 일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