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의 춤추는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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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의 춤추는 물결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7.04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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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시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어서 작가의 즐거움, 고통, 행복, 아픔을 공유하게 된다. 시인만이 아니라 화가나 사진가의 개인전을 둘러볼 때도 작가의 고뇌와 맞닥뜨리기도 하고 거친 숨소리를 듣기도 한다. 감정의 섬세함이 작품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내놓는 일은 이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번역해 내 것으로 재구성하는 일이기에 벌거벗겨진 작가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그러한 행위가 진솔할 때 독자와 관객은 더 큰 기쁨을 얻는다.

눈에 보이는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의 세계로 옮겨 놓을 때, 화가에게는 다양한 노력이 요청된다. 서양의 미술사에서도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다다이즘과 같은 많은 유파가 등장한 것도 노력의 한 방편이었다.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은 반증이다. 사과를 화폭에 옮길 때 다양한 방법과 색채를 사용할 수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것을 어떻게 선택, 결정하느냐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2차원의 평면에 그려진 아름다운 사과 이미지를 ‘결정-이미지(crystal-image)’라 불렀다. 크리스탈 물잔을 햇빛에 비춰보면 굴절과 반사가 일어남을 볼 수 있다. 미술 작품을 단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들뢰즈가 보기에 작품의 심장은 ‘결정-이미지’에  있다고 여겼다. 이 개념 속에는 ‘현실적 이미지’와 ‘잠재적 이미지(virtual image)’가 결합 돼 있다. 

우리는 사물을 보이는 대로 본다고 믿지만, 우리의 필요와 요구가 있고 그것에 의해서 드러난 측면이 ‘현실적 이미지’다. 그것에 반해 우리의 기억과 추억, 그리고 전망과 관련해서 사물을 일그러지게도 바라볼 수도 있는데 그것을 들뢰즈는 ‘잠재적 이미지’라고 불렀다. 어렸을 때 뛰어놀던 초등학교 운동장은 큼직했는데, 성인이 돼 가본 초등학교는 작은 운동장에 불과해 보이듯이, 거실에 걸려 있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이 문짝보다 크게 보이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때그때의 감정으로 사진을 보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은 ‘현실적 이미지’와 ‘잠재적 이미지’로 둘러싸여 있다. ‘결정적 이미지’는 ‘현실적 이미지’와 ‘잠재적 이미지’가 뒤엉켜 있기도 하고 연결, 순환되기도 한다. 새롭고 미학적인 ‘결정-이미지’를 어떤 모양으로 내놓느냐가 작가의 역량이라고 들뢰즈는 언급했다.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고 남다르게 묘사하려고 한다. 이미 주어진 개념이나 공식으로 환원되는 세계를 묘사한다는 것은 계산이나 재인식에 불과하다. 사물을 낯설게 보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의 말처럼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다. 시인은 선배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그를 넘어설 때 ‘강한 시인(strong poet)’으로 남아 있을 수 있기에 그 ‘영향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원고지를 수없이 찢기도 한다고 미국의 비평가 폴 드 만은 시인의 고뇌를 언급한 적이 있다. 19세기 프랑스 천재 시인, 랭보는 ‘시인은 투시자(voyant)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뭔가를 봐야 한다는 이 말을 들뢰즈도 높게 평가했다.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다. 낯선 새로운 단면, ‘결정-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6월 1~30일) 예당저수지의 디아트엘 미술관에서 열렸던 소금란의 ‘금란 花, 話’는 빛의 마술을 보여주는 독특한 사진 개인전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청사진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청색소가 모든 사진의 배경을 이루는 시아노타입(cyanotype) 프로세스의 낯선 사진이었다. 사진(photography)은 ‘빛(photo)’을 이용해 ‘쓰고 그리다(graphy)’의 의미가 함의돼 있다. 시아노타입 프로세스의 사진은 아르쉬지 수채화 종이에 시에노 용액을 바르고 빛의 작용을 통해 이미지를 얻어낸다. 시에노 용액이 햇빛에 반응하기 전에 그 위에 나뭇잎, 꽃잎 등과 같은 사물, 이미지가 들어 있는 셀로판지를 올려놓고 물을 뿌리고 문질러서 빛의 마술을 거쳐 ‘프러시안  블루’의 출현을 기다려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다시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빛이 만들어낸 이미지 위에 꽃과 별을 그리고, 보석을 붙이기도 한다. 사진에 회화가 오버랩되는 셈이다. 들뢰즈가 말한 ‘현실적 이미지’ 위에 ‘잠재적 이미지’가 콜라주, 몽타주 된다. 이런 작업은 사진작가와 화가의 역량이 함께 발휘될 수 있는 놀이터다. 이 놀이터에서 세상을 낯설게 재해석해 만들어낸 ‘결정-이미지’들은 빛나는 성좌(星座)가 될 수 있다.

소금란은 빛의 마술을 이용한 시아노타입 프로세스와 사진, 회화를 융합해 자신의 세계를 낯설게 창조해 냈다.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은 예술의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사람들이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소금란은 예술이라는 전선(戰線)의 맨 앞에 위치해 뛰고 있는 진정한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선의 맨 앞에서 뛰는 자)’라 할 수 있다.
 

김상구 <전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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