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홍동흥부예술단

연극을 통해 삶의 윤리를 말하다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지난 4월 홍동면을 지나다 ‘마당극 <흥부전> 주민 배우를 모집합니다’라고 쓰인 파란 현수막을 봤다. ‘저건 뭘까’ 사진으로 기록한 뒤 멀찌감치 6월이 돼서야 연락을 취한다. “단원들 모집돼서 연습 시작했어요. 오세요”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온 간단한 음성은 홍동다움센터로 기자를 안내한다. 지난달 23일 오후 7시, 10명 남짓의 단원들이 모여 ‘마당극, 흥부와 오리’를 연습하고 있었다.
홍동흥부예술단을 꾸린 이번영 대표는 “흥부전의 철학을 홍동에 실현시키고자 한다”며 창단 계기를 밝혔다. 그런데 왜, ‘홍동’흥부예술단일까? 그리고 ‘흥부전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이는 홍순명 전 풀무학교 교장이 집필한 책 ‘들풀들이 들려주는 위대한 백성들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총 3권으로 간행된 홍 씨의 책은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으며, 홍동을 배경으로 옛이야기 속 지혜와 한국인의 귀한 심성을 담고 있다. 그중 2권에 실린 ‘흥부전’은 제비를 대신해 홍동 유기농법의 상징인 오리를 접목시키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점이 특징이다.

이를 본 김영호 전 산업통상부장관은 “놀랍다,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모임을 가지게 됐고, 홍순명 씨는 자신의 소설을 토대로 극본을 만들게 됐다. 이로써 홍동흥부예술단이 생겨났으며, 단원들은 격주 월요일마다 두 시간가량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흥부전은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교훈 너머 인간의 본성과 욕망, 사회적 책임, 그리고 삶의 윤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이다. ‘선의는 어떻게 사회를 회복시키는가, 탐욕은 어떻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가, 그리고 인간은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물음 아래 날카로운 철학적 메시지가 관통한다.
이번영 대표는 말한다.
“홍동의 흥부전은 ‘착한 사람이 돈을 잘 버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착한 경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김영호 장관이 흥부전에 빠져있는 이유도 이와 같아요. 김 장관이 경제학 전공자로서 자본주의 경제에 큰 실망감을 느끼고, 함께 사는 공동 경제를 꿈꿨는데, 홍동 흥부전에 그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깊이 연구하고 실천하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흥부전을 연극화해 홍동과 풀무학교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 삶’을 보여주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요. 나아가 공연을 통해 홍동을 문화와 예술이 살아있는 지역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마당극 ‘흥부와 오리’는 홍성군평생학습센터의 지원을 받아 오는 11월, 홍동 문당리에서 진행될 ‘한·중·일 유기농업인단체 국제회의’의 식전 공연으로 첫 막을 열게 된다. 이후 홍동흥부예술단은 마당극뿐 아니라 무대극과 어린이 연극 등 흥부전의 다양한 버전을 총체적으로 다루며 흥부전의 철학과 이상을 꾸준히 펼칠 계획이다.

총 11명의 단원들은 연극 경험이 전무한 일반인들로, 홍성·홍동·장곡·내포·결성 등 여러 동네에서 모였으며, 직업 또한 홍동초 4학년 학생부터 농민·주부·회사원·요식업 등 다양하다. 또, 극의 연출·지도는 우리문화전문연희단 꾼의 조영석 대표가 맡았다. 이들은 ‘착한 사람이 대박 나는 새 시대 이야기’를 희구하며 오늘도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흥부전은 과연 옛이야기일까? 홍동면의 지역 특색을 입고 다시 살아난 고전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는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배움이 될 것이다. 이 작은 동네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낸 삶의 윤리를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