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노래하는 장사익 소리꾼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지난 5월 검은등뻐꾸기가 우짖는 봄의 언덕에서, 편기범 국제스피치학회장의 팔순 잔치를 위해 고향을 찾은 장사익 소리꾼을 만났다. 그를 보자마자 희한하게도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음미’ 무언가를 계속해 깊이 새기고 느끼는 자의 얼굴, 글자가 그의 얼굴에 살포시 내려앉아 중첩됐다. 생경한 첫인상이었다.
편 회장의 팔순 잔치 공연을 통해 처음 듣게 된 장사익의 목소리는 마치 비에 젖은 소나무의 껍질 같았다. 삶의 거친 굴곡,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품고 동시에 흐르며, 청중의 기억과 감정을 아스라이 펼쳐냈다. 그는 노래한다. 인생의 아픔과 겸허 그리고 여전히 피어나기를 멈추지 않은 사랑과 용기를 담아. 그 소리는 너무도 진하게, 우리의 일상 속 균열 사이로 스며들어 작은 위로를 전한다. 이렇듯 장사익의 언어는 음표가 되어 마음의 지층을 두들긴다. 인간의 마음을 건드려 눈물짓게 하는 소리, 이는 ‘깊이감’과 ‘진실성’을 나타낸다.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러한 성질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팔순 잔치가 끝이 나고, 그는 자신의 고향 마을인 ‘삼봉마을’로 기자를 안내했다. 잰걸음으로 장사익 소리꾼을 쫓았다. 소박한 집들이 세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 오붓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제가 급장이었거든요. 등교 전에 웅변을 한답시고 삼봉에 올라가서 소리를 질렀어요. 저도 왜 그랬는지 몰라요. 하하하하하. 삼봉 올라가는 길에 제당(祭堂)이 있어 으스스한데도, 오 년 동안 그렇게 아침마다 올라가서 소리를 질렀어요.”
광천 삼봉마을 곳곳엔 그의 유년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마음 한편에 간직된 추억을 건져 올려 자신의 음악에 담아냈다. 1집 앨범 주제곡 ‘하늘 가는 길’은 광천천 벚나무에 꽃잎이 흐드러지던 봄날, 할아버지 꽃상여를 매고 가던 기억으로부터 태어났다.
“광천천 다리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요. 아버지가 시장에서 아기 돼지 장사를 하셨는데, 귀가하실 때 광천 장에서 이 다리를 건너오시기 때문에 동생과 함께 마중을 나갔어요. 아버지를 만나 손잡고 집으로 걸어오던 기억이 생생해요.”
장사익 소리꾼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3년가량 가요 학원에 다니며 노래를 배웠고, 군(軍) 제대 후엔 국악기를 10여 년간 공부했다. 그렇지만 그는 무대에 올라 대중에게 소리를 전달하는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될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할 적엔 열댓 번은 전직했을 정도로 인생에 곡절이 많았던 그는 주변의 권유로 대중의 눈에 등장하게 된다.
“제 노래와 목소리의 저변에는 제가 겪은 인생살이의 힘듦이 들어있고, 그것들을 부름으로써 풀어내요. 그러니 노래 자체가 제 얘기를 하는 것이죠.”

‘장사익’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 ‘찔레꽃’의 비화는 무직자 청년의 어느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잠실에 거주하던 그는 아파트 주변에 활짝 핀 덩굴장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꽃향기가 나기에 당연히 장미꽃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장미꽃에서는 아무런 향기도 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대체 이 향기는 어디에서 흘러오는 걸까 하고 향기의 주인을 찾아다녔어요. 저 구석에 별 볼 일 없이 숨어있는 하얀 꽃에서 그 향기가 나는 거예요. 그 꽃을 보는데 갑자기 ‘참, 내 모습 같다’는 인식이 들면서 울컥했어요.”
그의 모든 노래는 자전적 성격을 띤다. 그렇다 보니 진정성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가짜가 즐비한 세상에서 ‘진짜’를 노래하는 사람, 그렇기에 이러한 마음이 모든 이의 마음에 전달되는 게 아닐까.
“진정성 있게 불러야 듣는 이들 저마다 자신의 얘기처럼 듣고 같은 마음이 된다고 생각해요. 같이 울어주는 게 진정한 위로라는 말도 있잖아요. 노래란 것은 노래 속에 있는, 내 안에 있는 걸 그대로 담아내야 해요. 가사, 음악, 표정, 몸짓 모두 합일돼야 하죠. 저는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틀에 박힌 게 아니라, 친숙하고 살아있는 이야기요. 그리고 저는 노래를 느리게 부르면서 내 안에 담긴 것들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해요.”
1995년 46세의 나이에 늦깎이로 데뷔한 장사익은 그동안 경험하고 습득한 인생사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했다. 추억과 고난과 그리움의 사이에서 싹튼 장사익의 음악은 진부하고도 고유한 저마다의 삶에 ‘공감’으로 다가선다. 무대에 선 그의 소리와 표정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절절함이 흐른다. 그에게 수식되는 수많은 말 중 ‘서정적 목소리’가 있다. 또,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라는 평이 따른다.
“우리 아버지가 광천에서 장구를 제일 잘 쳤어요. 밑에 집에 사는 아저씨는 태평소를 부셨고요. 저녁때면 두 분이서 연주하시는 소리를 매일 듣고 자랐어요. 그래서 제가 그 정서를 갖고 있어요.”
장사익 소리꾼은 음악 외에도 산책하며 사진으로 기록하고, 취미로 20여 년간 붓글씨를 쓰는 등 예술 영역에 포함된 다양한 활동을 즐겨하고 있다. 이상봉 디자이너의 옷감에 자신만의 필체인 ‘흘림체’를 써 내리기도 했으며, 지난 2023년에는 서울과 부산에서 사진전(展)을 열기도 했다.
“저는 여러 가지 예술에 관심이 많아요. 국악이나 가요뿐 아니라 클래식도 좋아하고, 전시회 구경을 자주 가요. 그림 전시회에서 작품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하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그릴 순 없잖아요. 그런데 사진으로는 그 느낌을 담아내는 게 가능하더라고요. 추상화 같은 장면을 카메라 프레임에 담아본 거죠. 어느 갤러리 회장님이 제가 찍은 사진을 보시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전시를 권유해 사진전(展)을 하게 된 거예요.”
장사익의 붓글씨엔 스승이 없다. 한석봉체를 기본기 삼아 연습하고 나서, 붓이 가는 대로 쓰고 쓰다 특유의 필체가 나온 것이다. 그의 고향 삼봉마을엔 흘림체로 새겨진 찔레꽃 비석이, 마을회관 현판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쉬는 정자가 있다.
“저는 무엇을 하든 즐겨요. 예를 들어 떨어진 포스터 뒤에 본드 자국 같은 거요. 그 본드 자국이 세월이 흘러 빛바래고 때가 묻은, 이런 거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뭐든지 관심 있게 봐요. 지나다니면서 아름다운 건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고 하죠. 그리고 모든 행위를 즐거운 마음으로 해요. 그러면 무엇을 하든 거기에서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요.”
평소 대중교통을 애용한다는 장사익 소리꾼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중요시했다. 이는 앞서 밝힌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그의 지향점과 맞닿는다. 그는 주로 종로나 인사동 등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를 찾는다고 말했다.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진, 이른바 스타들은 섬처럼 동떨어져 고독하게 지내는데, 노래를 하려면 사람들과 가까이 접해야 해요. 대중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사람 냄새나는 곳을 자주 다녀요.”
기자는 그의 입에서 나온 ‘사람 냄새’라는 말에 조용히 멈칫한다. 편 회장의 팔순 잔치가 있던 장소에서, 기자는 장사익 소리꾼의 옆자리에 앉아 갈비탕을 먹었다. 그러는 내내, 정말이지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그에게 인사했고 기념사진을 요청했다. 기자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진력날 만도 한 연쇄적 인사와 요청에도 그의 태도는 일관되게 정겨운 온기를 보였다. 몇 분 전 상황을 돌이키고 있는데, 갑자기 장사익 소리꾼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거, 저거 찍어야 돼요. 굉장히 멋있는 장면이에요”라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광천천 산책길 나무 벤치에 앉아 인터뷰 중이던 그와 기자는 기찻길에 들어서는 기차를 핸드폰에 주워 담았다. 기차가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기자는 낭만을 그는 자신의 추억을 주웠다. ‘사람 냄새’ 그 말에 붙들려 멈칫한 이유를 깨닫는다. 그것은 장사익의 자기소개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는 오늘처럼 고향에 내려오는 날엔, 여전히 이곳에 사는 누이 집에도 가고 더러 아버지 산소에도 가보고,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뵙거나 동창 친구들을 만나 식사하고 차를 마신다고 했다. 유명을 얻었기에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머무는 사람으로, 그는 광천을 찾는다.
“저는 정신이 있고 목소리가 있는 한 노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지금보다 더 나이 들어서, 늙은 나이에 빼쭉 말라서 지팡이 짚고 무대에 올라 ‘진짜 노래’를 할 것 같아요. 죽음을 앞에 두고 노래를 한다는 게 얼마나 멋있어요. 그 소리가 어떨까, 어떤 소리가 나올까… 너무 신비스럽지 않아요?”
음악은 인간의 영혼을 두드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소리는 공기의 떨림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마음을 건드릴 때, 우리는 눈물 짓고 미소 짓는다. 음악은 말보다 먼저 존재했고,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에 다다른다. 슬픔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을 때, 한 줄기 선율이 찾아와 어깨를 어루만지고, 기쁨의 순간엔 박자에 몸을 맡기며 세상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심장의 박동처럼 리듬은 생명을 느끼게 하고, 멜로디는 기억 속 한 장면을 되살린다. 익숙한 노래 한 소절이 지나간 계절을 불러내고, 낯선 음악이 미래를 향한 상상을 틔운다. 음악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 공간을 가로지르며 인간을 서로 잇는다. 소리는 감정을 녹여내는 그릇이고, 음악은 그 감정을 건네는 언어다. 그래서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