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로봇에 점령당해가는 노동 현실의 암울함 아프게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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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로봇에 점령당해가는 노동 현실의 암울함 아프게 담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7.18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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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슬 시인의 시집 <걸레>

앞으로 사회는 자본과 노동의 갈등과 대립에서, 자본의 상징 AI와 인간의 상징 노동, 더 나아가 AI와 인류의 갈등과 대립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러한 조짐은 이미 노동현장뿐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 결과는 그동안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재앙으로 표출될 것이다. 이 심각한 상황은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앞에 닥칠 것이다. 아래 인용 문장은 정소슬 시인이 지난 2018년 9월 ‘울산문화재단 2018 예술로(路) 탄탄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출판사 ‘작가마을’에서 펴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걸레>의 ‘시인의 말’ 일부다.

“인간의 능력이 인공지능 AI에 제압당하는 시대. 경제라는 거대 공룡은 우리 아우성 따윈 아랑곳없이 품에 안은 AI의 재롱만 즐기고 있다. 공룡이 꿈적거릴 때마다 우리 삶터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그때마다 내 일자리는 여지없이 유린당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적자생존의 정글에 끌려와 있고 약육강식의 창살 속에 갇혀 있다. 거대 발자국이 판 수렁에 빠져 몸부림치다 몸부림치다 걸레가 되어있는 내 모습, 들여다본다.” 

시집 <걸레>는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 AI와 로봇에 점령당해가는 노동 현실과 이로 인해 파괴당해가는 인간성의 암울함을 아프게 담고 있다.

정훈 문학평론가는 시집에 대해 시집해설에서 “시가 세계의 예민한 곳을 시인의 창조적 영감과 부딪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언어의 꽃이라는 점에서 보면, 정소슬의 시야말로 이에 어울리는 한 장면이 아닐까. 냉소와 역설이 이번 시집의 여러 시편들에서 보이는 만큼이나 그의 내면적 통점은 강렬하다”고 평했다. 또한 “이는 고통이되 사회와 길항하는 가운데 점점 자라난 희망과 절망의 습합에서 비롯한 갈증의 한 요소다. 즉 온전하고 바람직한 세계를 희구하면서, 이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된 부조리와 몰상식적인 현상을 목도하면서 내면화된 저항의식이 뭉쳐진 곳이 그의 통점이요 갈증의 최대치인 것이다”라며 “세계에 대한 거리감에서 생겨나는 예민한 감성과 비판의식이 그의 독특한 시적 형상화와 맞물려 이룩한 성과를 잘 보여주는 시가 이번 시집의 표제작인 ‘걸레’다”라고 논했다

“나는 걸레다 나는 비정규직이다/반란을 꿈꾸는 미전향 장기수이다/노동의 독이 밴 노동 중독자이다/나를 충동질하여 내 노동을 빨아먹는 그들은/걸핏하면 내 귓등 간질이며 사랑을 주절거리고/가랑이에다 기름을 부어 떡 메질 일삼는다/그럴 때면 그의 거친 숨소리에/덩달아 흥분하기 일쑤고/그의 다급한 정에 연민을 느끼기 일쑤고/그러다 그만 계약 연장에 동의해버리기 일쑤고//동의를 받아낸 그는 즉시/나를 구정물에 처넣어 인정사정없이 흔들어댄다/그간 얻어먹은 거 다 토해내라 윽박지른다/그 악덕 조항이 애초 기본 규약에 숨어 있었다는 걸/나중에야 알지만/또 속았구나 후회하는 반복이지만/다 잠든 밤 구석에 처박혀/노동의 독물 빼내기만도 힘이 버거운/난치성 결벽 증후군까지 품어 안고 살아가는/천형의//그러나 결코 포기되지 않는 봉기의 땀으로/꿈자리 늘 축축한/피톨마다/면면히 흐르는 비분 의열의 검은 피/나는 나는 외세 소탕꾼 아나키스트의 후예이다”(표제 시 ‘걸레’ 전문)

시인은 1957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정정길이다. 2004년 계간 ‘주변인과 시(詩)’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내 속에 너를 가두고>, <사타구니가 가렵다>, <걸레> 등 3권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회, 민족작가연합, 곰솔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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