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9년 참교육실현의 마음을 모아 결성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창립에 함께 하고 역동적인 활동을 펼쳐온 권혁소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아내의 수사법>이 2013년 출판사 ‘푸른사상’에서 ‘푸른사상 시선’ 28번째로 출간됐다. 시집에는 표제 시를 비롯해 ‘노숙 농성’, ‘커피 아줌마’, ‘황토집에서 길을 묻다’, ‘시인은 시를 접고’ 등 전교조와 사회 연대 활동 등을 통해 몸소 겪은 체험에서 육화 발화된 뛰어난 노동 시 등 가편들이 가득 담겼다.
“겨울을 살아 낸 나무들이/새순을 틔워내는 것을 보면서 아내는/나무들이/길을 잃지 않으려고/가지 끝마다/연둣빛 등불을 하나씩 단 것 같다고/아파트 베란다에서 말했다//가지 끝마다/연둣빛 알전구 하나씩을 매단/세상을 희망으로 부풀게 하는 전령들이/성장판이 자라는 고통을 딛고/한 해 한 눈금씩 제 키를 키운다//아내가 시를 낭송하고/나는 그것을 종이 위에 적는다/아내의 수사가 봄을 환히 밝힌다”(표제 시 ‘아내의 수사법’ 전문)
시집에 대해 홍기돈 문학평론가는 “(시집) <아내의 수사법>이 지탱하는 긴장은 시인이 겪는 사회 현실과의 불화로부터 기인하였다. 마땅히 청산되어야만 할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로 구축되고 운영되는 타락한 사회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변화의 기대도 난망하기만 하다”고 전제, “그래서 시인에게 지금 이 세계는 머물러 고여 있는 시간이며, 추운 겨울일 수밖에 없다.”면서 “시인은 이 얼어붙은 현실을 어떻게든 건너가고 있다. 어떻게? 불연기연(不然其然)의 애매성을 끌어안고서, 그는, 건너간다”고 평했다.
이원규시인은 뒤표지글에서 “동갑내기 권혁소 시인의 시는 날것이다, 육성이다, 통곡이다. 온갖 미혹의 수사를 과감히 버리고 시대정신에 걸맞은 깃발의 맨얼굴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웃을 일 없다//미루어두었던 앞니 하나/또 뺀다’는 결기가 애절하다 못해 섬뜩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격한 것만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한때는 앞바퀴 같은 삶을 살자 했지만 지금은/뒷바퀴 같은 삶을 생각’하는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면서 ‘잃어버린 이름들 되찾으라’는 여산재(如山齋)의 귀뚜라미 울음소리에도 화답한다. 돌아보면 언제나 북풍한설 속의 한 그루 강원도 금강송이 테너의 자세로 서 있다”고 논했다.
송경동 시인은 “아는 이들이 많듯 저기 동해 난바다를 굽어보는 미시령 아랫마을엔 모두가 멸종했다고 믿는 ‘조선 호랑이’ 한 마리가 청정하게 살아 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이, 강원도에 가면 무엇이 있지, 라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강원도엔 권혁소가 있지’라고 대답해 왔다”며 “그의 시는 보기 드물게 용맹스럽고 듬직하고 굵으면서도 섬세한 신경을 가졌다. ‘시와 혁명’을 한 몸으로 살아보고자 했던 한 아름다운 이의 영혼의 시편들이 치장 없이도, 가감 없이도 아름답다”고 밝혔다.

1962년 평창 진부에서 태어난 시인은 1984년 시 전문 무크지 ‘시인’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論介(논개)가 살아온다면>, <수업시대>, <반성문>, <다리 위에서 개천을 내려다 보다>, <과업>, <아내의 수사법>, <우리가 너무 가엾다>, <거기 두고 온 말들>이 있으며, 함께 지은 책으로 <그래, 지금은 조금 흔들려도 괜찮아>가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장.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한국작가회의 강원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제3회 강원문화예술상과 제6회 박영근작품상을 수상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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