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운대학교 부동산경영학과 교수
칼럼·독자위원
서울에 사는 A씨는 시가 3억 원 정도의 빌라에 임대차 보증금 1억 원을 지급하고 이사를 했다. 그러나 그동안 모은 전 재산에 은행대출까지 받아 보증금을 마련한 A씨는 혹시라도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가 보증금을 날리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다. 등기사항을 확인한 결과 다행이도 해당 주택에는 선순위 근저당권이 2000만 원밖에 설정돼 있지 않았다. 이에 A씨는 임차권 등기를 할까 생각도 해 봤으나 이 정도 담보로는 임차주택이 경공매로 넘어가더라도 충분히 보증금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등기를 하는 대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만 받아뒀다.
그 후 해당 주택은 임차인이 우려했던 것처럼 경매로 넘어가게 됐고, 3억 원 가까운 가격으로 낙찰됐음에도 예상과 달리 A씨는 배당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보증금 1억 원을 모두 날리게 됐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아 놓으면 설사 해당 주택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가더라도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세입자에게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민법상 부동산임차인은 당사자 간에 반대약정이 없으면 임대인에 대해 그 임대차등기 절차에 협력할 것을 청구할 수 있으며, 부동산임대차를 등기한 때에는 그때부터 제삼자에 대해 효력이 생긴다. 이러한 효력을 등기의 대항력이라 하는데, 문제는 임차인이 등기협조를 요구하더라도 임대인은 법적으로 반드시 이에 응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실무상 임대차 등기는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등기를 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임차주택의 경공매로 계약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쫓겨나고 보증금마저 날려 버리는 피해가 속출해 사회문제가 됐다. 급기야 정부는 민법에 대한 특별법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해 임대차는 그 등기가 없는 경우에도 임차인이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전입신고)을 마친 때에는 그 다음 날부터 제3자에게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대항력을 인정하게 됐다. 더 나아가 이러한 대항요건과 임대차계약증서상의 확정일자까지 갖춘 임차인은 경공매 시 임차주택(대지 포함)의 환가대금에서 후순위권리자나 그 밖의 채권자보다 우선해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는 우선변제권까지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 사례에서 세입자가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았음에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보증금을 모두 날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같은 날 행하여진 전입신고와 근저당등기의 효력발생 시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전입신고는 시간의 선후에 관계없이 다음 날 오전 0시에 그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반해, 부동산등기법상 등기신청은 등기관이 등기를 마친 경우 그 접수한 때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위 피해사례의 경우 임차인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은 당일 오후에 임대인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고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결과 전입신고보다 등기의 효력이 하루 먼저 발생해 선순위권자인 은행이 먼저 거액의 배당금을 받아가 후순위로 밀린 임차인은 배당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임차인이 전입신고를 한 당일에 근저당 등기가 접수됐는 지 여부를 인터넷등기소를 통해 수시로 실시간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임대차 계약서에 적어도 임차인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는 다음 날까지는 임대인이 새로운 근저당 설정등기를 하지 않겠다는 특약사항을 명시하는 것도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실효적 보호대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