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으로 지켜온 맛의 비결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또다시 회귀한 여름은 인간의 머리를, 그 아래 달린 눈동자를 무지근하게 만든다. 세월로 그을린 쇳빛 아스팔트엔 투명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시야에 들어온 모든 것이 희끄무레하다. 후더운 바람이 불어와 풀잎을 쓰다듬고 백금빛 태양은 오래된 담장에 열기의 색채를 올려놓는다. 거기, 더위를 집어삼킨 몸뚱이가 존재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버둥대고 있다. 열기의 내부에서, 본능은 기운을 차리라 지시하고 이에 순응하듯 끈적한 몸뚱이가 자신을 온전케 하기 위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홍성읍과 홍동면의 경계쯤에 위치한 ‘만수무강(대표 김종운)’은 한 자리에서 25년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는 이름난 맛집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개 장어구이와 어죽을 즐겨 먹지만, 기자는 동치미막국수와 전복비빔밥을 주문했다. 하나는 극도로 차갑고 또 하나는 극도로 뜨겁다. 양극단에 놓인 이 두 가지 음식은, 똑같이 여름의 얼굴을 대변한다.
흐리멍덩한 정신 앞에, 뚝배기와 국그릇이 등장한다. 소리는 지글대고 냄새는 고소하다. 음식의 생김과 풍미가 흐트러진 정신을 끌어모은다. 숟가락으로 섞섞 비비는데, 벌써 밑바닥엔 누룽지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곳까지 긁어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이 음식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도록 제대로 섞어준다. 연둣빛이 찰지게 들러붙은 숟가락으로 봉긋하게 떠내 한 입 크게 맛을 본다. 내려앉은 눈꺼풀 속에서, 어둠을 빌려 음미한다. 쓴맛과 단맛 사이를 묘하게 오가는 전복 내장의 농후한 맛과 여린 부추와 새싹의 싱그러운 맛, 거기에 알알이 터지는 날치알과 아삭한 콩나물의 식감이 적절히 비벼져 혀에 착 감기는, 정말이지 계속해 끌리는 맛을 완성시킨다. 구수름한 시래기는 이 모든 재료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교각 역할을 한다. 이어 함께 나왔던 국을 그릇째 들이켠다. 와, 이것 또한 풍미가 보통이 아니다. 이슬 맺힌 풀잎에 봄볕 한 가닥이 고요히 내려앉는 풍경이 연상된다. 전복비빔밥과 이 국은, 여름에 놓인 인간을 이전 계절인 봄으로 이동시킨다. 녹음(綠陰) 이전의 색감으로, 더위 아닌 온기로, 봄날의 정원 앞에 세워놓는다.
전복비빔밥을 네 숟갈쯤 맛봤을 무렵, 동치미막국수가 나왔다. 뚱뚱한 흙빛 면발이 살얼음 튜브를 끼고 있다. 식초나 겨자,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국물부터 맛을 본다. 우리 할머니가 만든 동치미 같다. 한쪽 벽면에 ‘동치미 판매’를 내걸만한, 연륜 내지는 내공이 느껴지는 수준이다. 면발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잘 삶아졌으며, 아닥아닥 씹히는 동치미 무는 시야를 깨끗하게 밝혀준다. 한 마디로 더위를 소화시키는 맛이다. 아니, 더위가 사그라들다 못해 수전증 상태가 되고 말았다. 떨리는 양손으로 닭살 돋은 양팔을 슥슥 문지르며, 스며드는 추위에 어깨를 움츠린다. ‘이번엔 겨울에 왔잖아?’ 온몸에 고드름이 달린 것만 같다.
지난 15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다시 찾은 만수무강, 김종운 대표는 앞마당 한편에서 마늘을 손질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상당한 양의 마늘은 김 대표가 직접 재배한 것으로, 어죽에 제일 많이 사용되며 3개월 정도면 전부 소진된다고 한다.
“더운데 식당 들어가 할까요?”
“비 한 번 내리더니 더위가 한풀 꺾여 여기도 괜찮은데요?”
그의 입에서 세월이 펼쳐졌다. 기자는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분주히 받아적었다.
홍성에서 나고 자라 홍동초·홍동중·홍성고를 졸업한 김종운 대표는 청년 시절 서울에서 생활하다, 어머니의 건강 악화로 인해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 농사짓는 거 보기만 했지 직접 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농사를 지어서 팔아보니까 노고에 비해 가격이 너무 낮은 거예요. 그래서 ‘아,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 싶어 식당을 준비하게 됐어요.”
그는 5년에 걸쳐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짓고,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차도 한 잔 드시고 갈 수 있게끔 조경 또한 신경 쓰며 ‘만수무강’을 준비했다. 청평댐에서 장어집을 하던 처갓집의 영향으로 장어구이를, 어린 시절 친구들과 냇가에서 잡은 민물고기의 추억을 살려 어죽을 내걸고, 지난 2000년 만수무강이 문을 열었다. 요즘엔 장어 150kg 정도는 우습게 판매할 정도로 소문난 맛집이지만, 초창기엔 홍성읍 변두리에 위치한 터라 장사에 어려움이 따랐다.
“처음엔 논일하는 어르신들께 백반도 배달하고 그랬어요. 술 좋아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여기 어죽 맛있다, 장어 맛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장사가 잘되기 시작했죠.”
만수무강의 장어구이는 손님들이 바로 드실 수 있도록 완전히 조리된 상태로 나온다. 특히 비법 양념이 발린 장어에 은은한 솔향이 입혀진 것이 특징이다. 또, 평소 어죽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조차 “이 집 어죽만큼은 먹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어죽 역시 인기 메뉴다. 참붕어와 장어 뼈를 고아낸 육수에 5년근 인삼과 각종 채소가 더해져 깊은 맛을 낸다.
김 대표는 기자가 맛본 전복비빔밥과 동치미막국수는 본 메뉴가 아닌 곁들이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한 어르신이 어죽이 매워 못 드신다며 공깃밥만 시켜 밑반찬이랑만 드시는 걸 보고서, 전복비빔밥을 만들었어요. 동치미막국수는 장어 드시는 손님들이 입가심으로 드시는 메뉴 중 하나고요. 저희집은 장어랑 어죽이 진짜예요.”
대표의 말을 들은 기자는 장어구이와 어죽이 몹시 궁금해진다. 그러나 전복비빔밥과 동치미막국수도 ‘진짜’였다. 다른 계절을 불러오는, 아득하고도 깊은 맛이었다.
전복비빔밥에는 kg에 10마리짜리, 즉 큰 사이즈의 전복 한 마리가 통째로 쓰인다. 거기에 솔부추와 세 가지 나물, 집에서 키운 닭이 낳은 유정란, 날치알 등이 더해진다. 매운 걸 못 드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만든 메뉴이므로, 보통의 비빔밥과는 다르게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는다. 전복 내장과 날치알에서 나오는 은근한 짠맛이 슴슴하고도 담백하게 간을 맞춘다.

또, 동치미를 따로 판매할 정도로 그 맛이 훌륭했던 동치미막국수는 잘 담근 동치미 자체가 비결이었다. 김 대표는 매년 가을이면 알이 크고 단단한 무를 2~3천 개 골라 동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엔 삭힌 청양고추와 쪽파만이 더해질 뿐 재료와 방법은 실로 간단했다.
“처음엔 사과도 넣어보고 배도 넣어보고 여러 가지 시도해 봤는데, 이게 제일이더라고요. 동치미는 무가 단단해야 하고 물이 좋아야 돼요. 또 간을 잘 맞춰야 맛있어요. 그것 말곤 없어요. 90 잡수신 할머니도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담냐’고 물어보셔요.”
김종운 대표는 딱 한 가지, 장어에 쓰이는 생강을 제외하곤 모두 국내산 재료만을 사용하고 있다. 상당수의 재료를 직접 재배하고 있으며, 장을 봐야 할 재료들은 재래시장을 통해 들여와 우리 지역 농산물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제가 농사짓는 것들이 많아요. 지금 손질하고 있는 마늘도 그렇고, 시래기도 농사지어 가을에 염장해 말린 거고요. 장 봐야 할 재료들은 뭐든지 우리 지역 것을 먼저 쓰려고 해요. 그런데 생강은 국내산을 쓰기가 어려워요. 장어 요리에 사용하기엔 국내산 생강이 너무 맵고, 껍질을 벗겨 놓으면 금방 새까매지거든요.”
끝으로 김 대표는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손님들이 건강하게 그리고 맛있게 드시는 게 우선이에요. ‘바른 먹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게 제 소신이에요.”
곁들이 메뉴만으로도 이리저리 계절을 옮겨 다니며 만족된 식사를 즐긴 기자는 장어와 어죽을 먹기 위해 만수무강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그때는, 가을에 도착하게 될까?

◆만수무강 메뉴
△민물장어(소금·양념) 싯가 △민물장어(2인이상) 1인 30,000원 △장어백숙 150,000원 △민물새우매운탕 大45,000원 小35,000원 △왕새우매운탕 大50,000원 小40,000원 △미꾸라지튀김 大22,000원 小17,000원 △왕새우튀김 10,000원 △점심특선 10,000원 △민물새우튀김 12,000원 △어죽(2인이상) 1인 9,000원 △전복비빔밥 15,000원 △돈가스 9,000원 △막국수(비빔·동치미) 9,000원 △후식된장 4,000원
·주소: 충남 홍성군 홍성읍 홍장북로 103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 쉬는시간 오후 3~5시 | 매주 수요일 정기휴무
·전화번호: 041-631-2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