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제 근로제'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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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 근로제'의 허상
  • 전만수<한양대 겸임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3.06.17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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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출범 100일인 4일 '고용율 70% 로드맵'을 발표했다. 지난해 말 기준 62.4%인 고용율을 2017년까지 70%로 높이겠다는 목표다. 한사람이 오래 일하는 대신 여러 사람이 쪼개어 함께 나누어 일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새로 32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이중 38.7%인 92만3000개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채우겠다는 야심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 정부가 추진하고자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자기필요에 따라 풀타임이나 파트타임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차별 받지 않는 반듯한 일자리", 현오석 경제 부총리는 "시간제 일자리는 전혀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라고 개념화 했다. 우선 중앙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공기업 등에서 내년부터 실시하겠다고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게는 세제 및 사회보험료를 지원할 계획임도 밝혔다. 2017년까지 5년간 로드맵 추진에 소요될 예산은 6조원으로 추산하나 내용으로 보면 추가소요는 불가피해 보인다.

'국민행복시대'를 기치로 출발한 새 정부가 출범100일 동안 수행한 정책실적 노트는 얇다. 그럼에도 전문가 집단의 평가가 70점을 상회한다. 상당부분 기대가치가 반영됐음 직하다. 인사는 낙제점이었다. 시작부터 '윤창중 사태'에 이르기까지 내내 소란했던 인사잡음의 기억만이 새 정부의 이미지인 것만은 부인키 어렵다. 미흡한 정책성과를 일거에 만회하려는 의도인지 깜짝쇼 하듯 100일째 날에 전격 무게를 실었다. 새 일자리는 늘리고 기존 일자리는 지키면서 일자리의 질은 올린다는 '늘지오'공약의 실천 맥락이다. 저성장시대 고용증가를 기대할 수 없는 난관을 극복하려는 정부의 고육지책적 의욕은 가상하다. 그러나 화려한 청사진 뒤에 드리워진 이율배반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정부는 네덜란드를 벤치마킹 하겠다고 의욕을 앞세우나 경제 사회적 여건들을 먼저 꼼꼼히 따져 보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였는지 의문이다. 풀타임과 파트타임의 임금격차가 크지 않고 사회복지가 잘되어 있는 유럽과는 사정이 다르다. 애당초 '삶의 질' 제고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접근할 사안이지 '일자리 나누기'로 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단추를 밑에서부터 끼우는 격이다.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는 정책은 비용만 수반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늘 일자리 창출에 의욕을 실어 예산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별무성과였다. 지난 정권에서 일자리 나누기로 시행했던 정책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결과적으로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하였고 청년 취업난은 더욱 가중됐다. 게다가 달갑지 않은 부산물로 세대간 취업 갈등까지 유발시켰다.

대통령의 설명대로 라면 시간제 일자리는 누구나 바라는 '꿈의 직장'이다. 그러나 재계와 노동계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비정규직만 양산하고 전반적으로 근로조건의 하락을 부추길 것 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재정효과가 작동되는 범위 내에서는 그 시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인해 늘어나는 세금은 오롯이 국민 몫이다. 늘어나는 세 부담만큼 국민 개개인의 가처분 소득은 줄게 된다. 일자리 나누기에 수반되는 4대 보험 등의 실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더라도 추가적 비용은 기업의 몫이다. 오히려 고용이 줄어드는 역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기업 특성에 맞게 수요 공급의 접점에서 파트타임 잡이 관행화 되어있다. 좋아 보인다고 일반화시키는 것은 억지의 통계놀음이다. 휴일도 없이 하루 15시간을 일해야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자영업자들이나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하는 계층에게는 사회적 위화감만 키울 뿐이다.

성장 없는 경제부흥은 불가능하다. 애당초 '성장 없는 고용'은 레토릭이다. '고용 없는 성장'도 문제이지만 정부가 돈을 풀어서 이루는 '성장 없는 고용'은 당장은 달콤하나 반드시 후유증을 수반한다. 어느 정부든 국민의 시각에서는 국민의 정부다. 또다시 그럴싸하게 포장한 잘못된 게임의 룰로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성장을 견인하는 것만이 고용을 늘리는 방법이다. 제도의 틀 내에서 기업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고 북돋아주는 역할에 중점을 둬야한다. 애당초 정부주도의 일자리 만들기는 물먹는 하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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