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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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 요 열 <새홍성교회 담임목사·칼럼위원>
  • 승인 2013.09.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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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명절 이후, 가족 친지들과의 만남 때문에 마음 상하고 힘들었다고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애게해 한쪽에 고린도라는 고대 도시가 있습니다. 도시가 생긴 이래 주전 146년에 로마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가 100년 쯤 지나 시저에 의해 재건되었고, 아우구스투스 때 헬라의 수도가 된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주후 50년경 바울은, 이 도시로 들어와 1년 반을 머물며 예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열정으로 생기 넘치는 아름다운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 안의 파벌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교인들은 가시 돋친 말과 행동으로 서로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교인들 간의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비화되기 일쑤였습니다. 관용과 이해와 사랑의 기쁨 대신 차별과 우월감과 원망이 그들을 지배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란 것도 참 별거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중심이 흩어지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형편없는 짓을 하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바울은 긴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라고 알려진 그 편지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문제 해결의 원칙은 간단명료합니다. '약자를 배려하라' 배려(配慮)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이리 저리 마음 씀'입니다. 바울은 배려라는 말을 통해, 기독교인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유익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나 좋을 대로'가 아니라 '남 좋을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안다'는 것, '내가 옳다'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라고 합니다. 틀림없이 옳은 말이라 해도,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막 하는 말은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요! 배려 없는 지식이란 것이 자기와 남을 해치는 흉기가 될 때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언제부터인가 TV 토론 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분명한 논리와 근거를 제시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인정하질 않으니 토론이란 것이 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꼼짝 못하도록 시원히 잘 퍼부었다 싶었지만, 오히려 더 큰 반발을 가져옵니다. 위기를 느낀 상대방 진영은 더욱 똘똘 뭉칩니다. 바울이 '지식에 근거한 삶이 아니라, 사랑에 근거한 삶을 살라'고 한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서울대에 길거리 전도 퇴치카드란 것이 등장했다 합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서울대 안에는 개신교 전도자들이 꽤 많이 활약(?)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카드가 등장할 정도니 그들의 극성스러움이 가히 상상이 되고 남습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내가 믿는 것을 강요하는 전도자들, 그러나 상대를 배려해서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식을 찾은 전도 반대자들. 누가 바울의 가르침에 더 가까운 것인가요?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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