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노부부의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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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노부부의 ‘아름다운 동행’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4.03.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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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70주년 이희영․이덕순 부부 화목한 가정 귀감
함께 한 70년 비결…“서로 믿고 양보하며 사는 것”

▲ 이희영 씨 부부가 결혼 70주년 잔치 후 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8일(음력 2월 8일) 홍성읍의 한 식당. 평상복 차림의 노부부가 축하케이크 앞에 다정하게 자리를 했다. 금마면 부평리 신평이씨 이희영(87)·전주이씨 이덕순(88) 부부가 주인공이다. 이들 부부는 8·15광복을 한 해 앞둔 70년 전 오늘인 1944년 음력 2월 8일 백년가약을 맺었다. 열일곱 살이던 신랑과 열여덟 살이던 신부는 강산이 일곱 번이나 바뀔 동안에도 변함없이 서로를 믿고 아끼며 살아왔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고 손자, 증손까지 직계가족이 모두 43명에 이른다.
이날 노부부의 결혼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50~60대의 아들·딸·며느리·사위와 10~30대에 이른 손자·손녀, 증손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노부부는 자식들이 준비해 온 축하 케이크의 촛불을 불며 오랜만에 어깨를 감쌌고 거칠어진 서로의 손도 꼭 잡았다. 노부부의 눈에 비친 촛불 속에는 70년을 함께한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서려 있었다.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느냐’는 질문에 이희영 옹은 “아버지께서 나를 장가보내려고 열다섯 살부터 중매를 권유하셨어. 서로가 연분이 아닌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가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열여덟살인 이 사람과 짝을 맺어 결혼했지. 옛날에는 부모가 인연을 맺어주면 무조건 살아야 하는 줄 알았어. 그때만 해도 어른들이 집안 가풍만 보고 결정하시면 얼굴한번 보지도 못하고 결혼했던 시절이니까. 아마 요즘 젊은이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 딸 둘 낳고 군대에 갔어”라며 말끝을 흐리는 팔순 노인의 눈가는 어느덧 촉촉이 젖어 있었다.
순간 부인이 말을 가로챘다. “결혼하고 8년이 지난 스물다섯 살 되던 동짓달 열이렛날 군대에 갔어. 아버님께서는 해방을 맞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가 무섭게 터진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이라 군대 보내는 게 내키지 않았던지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썼지만 그냥 갔어. 무사히 제대해서 다행여~” 팔순이 넘은 부인의 기억력이 참으로 또렷하다. “딸 둘을 낳고 군대에 갔는데 큰 아들(현 이병국 홍성군의회 의원)을 낳았길래 업고서 면회를 갔어. 그런데 아들을 안아보지도 않는 거야. 그래서 내가 꾀를 내 포대기를 풀고 다시 업혀달라고 했더니 어쩔 수없이 안아볼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아들을 안아 봤다니께~” 팔순의 노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선명하게 당시를 떠올렸다.
큰 며느리(이정숙 삽다리곱창 대표)도 한마디 보탰다. “제가 결혼한 지 30년인데 지금까지 어머니가 화내시는 것을 한 번도 못 봤어요. 아버님 성격이 급하셔서 화를 내셔도 대꾸 한 마디 없으셔요. 5000평이 넘는 논밭 일을 손수 하시면서도 짜증 한 번을 내지 않으셔요. 정말 국보 같은 존재셔요.” 성격이 정반대인 부모의 삶을 지켜보면서 ‘존경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 옹이 가슴에 손을 얹으며 “내가 7년 전에 심장수술을 했는데 4년 전에 재발해 치료를 받고 있어. 이 사람도 4~5년 전에 심장이 좋지 않아 병원신세를 졌지. 그래도 아들·며느리들이 얼굴 찌푸리는 것 못 봤어. 착한 며느리와 자손들이 집안의 복이지”라며 며느리 자랑을 이었다. “내가 아홉 번째로 소개를 받아 맞은 큰 며느리야. 인사성 밝고 착한 큰 며느리 본봐서 그런지 둘째, 셋째도 잘해. 큰 며느리 잘 얻어야 한다는 소문이 맡나봐”라며 깊게 패인 주름을 펴며 밝게 웃었다.
큰 아들인 이병국 의원의 여담에서 집안의 묘한 인연을 느꼈다. 큰 누이(이경자)와 매형(이달헌), 둘째 누이(이병자)와 매형(이세창), 본인(이병국)과 처(이정숙), 동생(이병규)과 제수(이경애) 등 본은 다르지만 사위와 며느리 모두 ‘이씨 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교육청에 근무하는 막내 동생 병진은 초등학교 교사인 제수(김성숙)를 만나면서 이씨 집안에서 ‘유일무이한 김씨’란다. 또 이 의원은 홍성고 29회, 동생 병규는 33회, 막내 병진은 37회이며, 아들 지용도 57회로 남자들 모두가 ‘홍성고동문 판’이라는 설명이다.
팔순을 넘긴 노부부의 결혼 70주년. 문득 결혼에 대한 정의가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결혼의 정의에 대해 ‘결혼은 상대편과 51%만 맞으면 되는 거. 49%가 안 맞더라도 서로 맞는 51%를 생각하며 49%를 참아내는 거’란다. 쉽게 만나고 가볍게 헤어지는 요즘 세상 결혼 70년 노부부의 삶을 통해 ‘믿음과 양보’라는 삶의 철학이 깊은 의미로 다가왔다. 결혼 70주년은 금강혼식이라 부른다. ‘단단한 금강석(다이아몬드)처럼 긴 세월을 함께해 존경받을 만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천연광물 중 가장 단단하고 광채 나는 보석인 다이아몬드 이름이 붙은 금강혼식을 맞은 노부부. 이들이 살아온 삶의 지혜는 오늘의 우리에게는 교훈임에랴.
70년을 해로한 금실의 비결은 대체 뭘까? “남편을 법으로 여기고 살았어. 여자는 참고 따라주고 그래야 돼. 결혼을 한 뒤에는 서로 믿고 양보하고 살아야지. 헤어지는 사람들은 서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서로 믿음이 모자라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어. 믿음의 끈을 놓으면 안 돼”라는 평범하면서도 진리 같은 답은, 그래서 삶의 길목에는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새싹이 돋아나는 따뜻한 봄날이 다가오고 있다.한관우(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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