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반 아이들은~컨닝 안 해요 <18>
상태바
꼴찌반 아이들은~컨닝 안 해요 <18>
  • 한지윤
  • 승인 2014.10.24 14: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듣고 있던 신중은 뭐가 뭔지 머리가 뒤숭숭해져서 재빨리 가로막았다.
"그만 좀 해라. 대체 어디서 모두 주워들었니, 그딴 거?"
"글서 나 아니냐. 허긴 나도 귀가 보배라 들은 얘기긴 하지만."
"기가 막히구나, 너란 앤."
신중은 호동의 속셈을 이미 알아차렸다. 하다엉덩이니 뭐니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한 가지, 감추고 싶었던 자신만의 비밀이 들통난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을 뿐이다.
친한 친구사이에도 그건 확실히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었다. 그것 하나만큼은 전적으로 자기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게 있었던 것이다.
"야, 신중아."
호동이 다시 매달려왔다.
"응?"
"너 의리가 뭔 줄 아니?
"무슨……"
"알면서도 이럴 거야? 그게 정말이라면 실망이다, 정말이지. 네가 언제부터 그랬니?"
"내가 뭘?" "의리 밥 말아먹고 닭발 내밀 줄은 정말 몰랐다. 정말 실망했어."
호동의 얼굴에 진심이라는 그림이 나타났다. 그쯤 되면 신중도 어쩔 수 없이,
"졌다."
하고 자수해서 광명 찾을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착금 뿐 아니라 직장까지 알선해 주고 또 제공하는 정보에 의거해서 거액의 포상금이 지급되는 것들은 나중에 두고 볼 일이긴 하다.
"실은 말이지……"
신중은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통해서 호동은 몇 번인가 음, 그래, 흐음하면서 매우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에게는 아주 흥미진진한 뉴스가 분명했다.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셔 주는 여자의 단비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한 호동에 비해 신중은 전혀 달랐다. 훔쳐먹는 사과가 더 맛있는데 그걸 그만 빼앗긴 기분이어서, 하여튼 여자는 항구 남자는 배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2의 사춘기라는 것이 그런 이유에서 생겨났을까. 거기서 더 무르익으면 어울렁 더울렁이니 공방살이니 뭐니 뭐니 하는 것들의 요상한 지꺼지가 생겨나게 되는 것일까?
지금껏 신중의 말에 호동이 그렇게나 적극적으로, 더 나아가서는 진흙탕에 철퍽거리도록 반응을 보였던 일이 이들의 우정학 사전에는 아직 한 번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나중에는 하마처럼 입을 벌리며 웃어대기까지 했다.
"우헤헤헤!"
온몸을 덜컹거리며 괴성처럼 그렇게 웃어댔다. 좀처럼 그런 식으로 짐승처럼 웃는 일이 없던 것으로만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 광경은 우헤헤헤가 아닌 다른 뭉서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간판은 어떻 수?" 호동이 예의 익살스러운 웃음을 거두어서 어느덧 자못 진지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간판?"
"얼굴 말야."
"일거보지도 못했어. 그럴 겨를이 있었어야지."
"버스 안에서도?"
"으응."<계속>

"걔네들이 네 잠질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너 정말!……"
"그래그래, 그건 농담야. 정말 못 봤니?"
"생각해 봐, 그럴 정신이 어디 있겠나."
"뭘?"
"바지 정면의 동대문이 점잖지 못 하게 스리 열린 줄만 알았다니깐. 생각해 봐라. 너 동대문이 평소 일반인들을 향해 열리는 거 봤니?
"진짜 동대문?"
"그래."
"네 바지가 아니고?"
"그래."
"그거라면 못 봤지. 봤으면 난 간첩야."
"그렇다니까."
"그렇다면……"
호동은 잠깐 무엇인가 머리큐를 굴리는 표정이 되었다. 그것이 신중을 궁금케 했다. 끈질긴 집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리려 잘됐다."
"잘 돼애?"
"그렇지 않아도 말야. 요즘 뭔가 새롭고 흥미 쫀쫀한 일이 없어 맹물탕 같던 판야."
"그래서?"
"우리 구경이나 한 번 가자?"
"구경?"
"대체 간판이 어떤 솜씨로 휘갈겨져 있는 애들이기에 도끼자국 가지고도 그렇게 겁 없이 설쳐대는지 궁금해서 못 견디겠어."
전 같으면 그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을 신중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호동이 더굽ㄴ에 도끼자국이 뭔지는 금방 알아차렸다. 고사성어에나 나올 수 있음직할 표현인데도 총알 같이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새롭고 흥미 쫀쫀한 일 없어 맹물탕 같다고 했다.
정말 할 일이 없는 게 아니다. 너무 많아서 그렇다. 낮에는 학교에서, 밤이면 집에서 온통 공부공부, 그래서 공부만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만 신경과민 증세를 보일 정도였다. 새롭고 흥미 쫀쫀한 일이라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기분전환을 내일을 위한 충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퍼질러 잔다고 피로가 풀리는 게 아니고,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났을 때 오히려 피로가 풀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직 고등학교에도 가기 전에 대학에 가기 위한 학력고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되는 신중과 호동 등이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호동의 말을 듣고 있던 신중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걔네들을 구경하잔 말이지?"
"맞았어."
"어떤 방법으로 봐?"
"그거라면 또 내가 왔다지. 넌 왔다 동생 갔다고 말야."
맞는 말이었다. 그런 문제라면 당연에도 미치지 못했다. 신중이 그런 분야에서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소위 왕창싸. 라는 것 하나 뿐인 게 사실이었다.
그것뿐이 아니다.
신중이 예를 들어 일본말을 안답시고, 도끼로 이마 까, 하면 호동은 대뜸, 깐 이마 다시 까, 하고 항상 앞지른 것이 두 사람의 현주소였다. 물론 사적인 면에서 그렇다.
"어떡할 생각인데? 좋은 생각이라도 있니?"
자신도 싫지 않았고 호동의 실력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 방법이 궁금한 신중이다.
"내가 누구니?"
호동이 되물었다.
"호동이지?"
"바로 그거야. 망설이고 주저 할 필요 없어,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들게 될 테니까."
"그럼?"
"그냥 돌격하는 거지."
"괴테의 외로운 병사처럼 말야?"
"너 똑똑한 거 나도 안다. 허지만 우리는 외로운 병사가 아니란 걸 명심해라."
"그럼 쓸쓸한 쫄병이니?"
"얏마, 그거나 그거나 뭐가 다르다고 그래? 하여튼 가는 거야."
"가아?"
"그래. 내가 이미 생각 한 자리 싸놨으니까 신경 끊고 말야."
"넌 참 기똥차게 빨리도 싸는구나. 벌써 쌌어?"
"내가 누구니. 이래 뵈도……"
"강호동은 못돼도 이 우주 안에서의 김호동이지."
"맞았어!"
신중은 이 시간 이후로 생기는 어떤 문제의 발생에 있어서도 호동만을 믿고 의지하기로 결심했다. 믿음, 소망, 사랑의 삼위일체를 호동에게 걸고 그가 하라는대로 무작정 따라서 하려는 결심이었다.
언제 어떤 수난을 당하게 될지 전혀 예측불허인 상태에서 무조건 돌격하게 된 것이다.
신중의 생각에 호동이야말로 노아의 방주였다. 하늘의 심판으로 인류를 멸망시킬 대홍수가 찾아든다 해도 같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호동의 덩치가 부패해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질 때가지는 적어도 석 달 열흘은 걸릴 테고, 그동안은 빠져죽지 않고 타고 떠있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방과 후.
신중과 호동은 K여고의 정문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때 호동이 얼떨떨해진 표정으로
"야, 어떻게 된 거야?"
하고 물으며 두꺼비 같은 손으로 신중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게?……"
신중도 같은 기분이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주위가 이해할 수 없게 조용했다. 여학생들이 떼지어 교문에서 쏟아져 나오며 재잘거려야만 될 시간인데 그렇지 않았다.
너무 조용했다.
그렇다고 K여고 전체가 이들 두 명의 돌격 때문에 몽땅 대피하는 소동을 벌인 흔적도 없엇다. 학교 건물은 위용을 뽐내듯, 그러면서도 여학교답게 여체를 상징하듯 있던 곳에 있었고 잇을 것도 다 있었다. 건축에 문외한들에게는 건물의 어디가 여체의 삼각지대에 해당되는가를 통 짐작할 수 없을 뿐이었다.
띠엄띠엄 한 명씩 여학생들이 교문을 빠져나와 조용히 허리아래를 율동시키며 걸어갈 뿐이다.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여학생들은 무엇 때문에 걸을 때마다 거기가 그렇게 멋지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조물주에게나 물어 볼 일이다. 해마다 봄철이 되면 그 돌아가는 모습이 훨씬 크고 적극적이며 골도 깊다고 하는게 그것 역시 알 수 없는 이치이다.
"뭐가 잘못된 거야, 그렇지?"
"모르겠어."
"이상한 일이군. 우리가 도깨비한테 홀렸나?
확실히 멍청한 녀석들이다.
한 가지만 알았지 두 가지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자신을 빌어 남을, 즉 내가 이러니까 K여고의 학생들도 그렇다. 라는 기초적인 상식조차 까먹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학생신분이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되는 일을 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는 역시 신중이 확실히 호동보다 머리 회전이 빨랐다. 공부에는 신중이 한 수 앞 이어서일까?
"맞았어!"
신중이 낮게 소리쳤다. 호동은 아직 알아듣지 못했다.
"뭐가 맞아?"
"너나 나나 한 심이 두 심이다. 그것도 아직 모르고 있다니 말야."
"뭔데?"
"지금 이 학교는 중간고사 시험 중이야."
"그래~애?"
"우리가 3일 전에 끝났지 않니."
중고등학교의 각종시험이 거의 같은 시기에 있게 된다는 상식을 재고하지 않는다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S교와 K여고가 같은 시기에 중간고사를 치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대개의 학생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다음인 것이다. 그만하면 하마의 엉덩이나 미스 유니버스의 각선미가 무엇 때문에 안 보이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쳇"
호동이 투덜거렸다.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였다.
"오히려 잘 됐다."
신중은 호동과 전혀 다른 뜻을 나타냈다.
"잘돼?"
"그래."
"어째서?"
"사실 난 지금 전까지만 해도 몹시 걱정했던 일이 있어."
"걱정?'
"생각해 봐, 우린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이야."
"그게 어때서?"
"그것도 몰라? 상대는 고등학생이란 말야."
"얼마나 좋으냐, 분위기 있고?"
"너 아직 깜깜이구나. 사랑한테는 낭만이라는 게 있다. 냉면 아니고 낭만 말야."
"뭐 말라죽은 낭만?"
신중은 호동의 말에 강한 거부감 같은 것을 느꼈다.


…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