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택리 환호취락, 목지국·감계비리국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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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택리 환호취락, 목지국·감계비리국 수도였다?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5.08.2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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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백제시대 ‘동아시아 최대의 환호 유적’으로 확인
청동기~원삼국시대 물과 인접한 구릉지거주 집단주거지
환호유적 주변 국가사적 지정, 공원·박물관 조성 목소리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들이 ‘동아시아 최대의 환호취락 유적’이라는 의견과 평가를 내놓고 있는 홍북 석택리 환호유적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환호유적주변에 대한 국가사적지 지정을 포함한 사적지 공원조성, 유물전시관·박물관 건립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이유다. 홍북 석택리 환호유적은 지난 2011년 10월부터 재단법인 한얼문화유산연구원에서 진행한 ‘충남도청 내포신도시 진입도로 구간 내 문화재 지표조사’ 중 석택리 일원에서 대규모 ‘환호(環濠)취락’(주위에 구덩이를 파서 두른 스스로의 방어를 위해 도랑 등이 구축된 취락)과 ‘주구묘’(周溝墓; 주검을 안치한 주위에 사각으로 도랑을 파서 만든 무덤) 등이 발견돼, 2012년 1월 2일부터 2013년 4월 12일까지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조선시대 약 1222기의 유구(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등이 발굴 조사됐다.

 

홍북 석택리 환호유적 안내표지판.

지금까지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초기철기시대 토광묘, 원삼국시대 주구·옹관묘(크고 작은 항아리 또는 독 두 개를 맞붙여서 관으로 쓰는 무덤. ‘독무덤’이라고도 함), 백제시대 석축묘(돌로 쌓은 무덤), 시대미상 수혈(땅 표면에서 아래로 파 내려간 구멍. 고대인들의 주거지로 이용), 시대미상 토광묘(지하에 수직으로 장방형의 구덩이를 파고 주검을 직접 매장하거나 목관을 사용하는 형식의 무덤. ‘움무덤’이라고도 함) 등의 유구가 발견됐다. 또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 초기철기 시대의 점토대토기, 원삼국 시대의 단경호, 파수부편, 백제시대의 광구호, 관정 등의 유물도 발견됐다. 특히 이번 발굴을 통해 초기철기 시대에서 원삼국 시대를 거쳐 백제시기까지 집단생활의 연속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큰 것으로 분석했다.

발굴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들은 석택리 환호유적에 대해 마한 54개 소국 중 석택리 일대는 목지국과 감계비리국의 수도였거나 집단주거지였음이 분명하다는 입장과 청동기시대부터 물과 인접한 구릉지에 거주를 시작하면서 원삼국시대까지 집단주거지를 이룬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마한(馬韓)에서 백제로의 전환과정을 밝힐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충남도의 무관심이 가치 있는 유적지라는 판단과 평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충남도는 석택리 유적이 보존 유적인 만큼 홍성군이 관리주체라 주장하고 있고, 홍성군은 유적일대 토지주가 충남도인 만큼 충남도가 홍성군으로 관리전환을 해야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문화재구역에 대한 관리를 문화재와는 동 떨어진 충남도종합건설사업소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의 일원화가 시급한 이유다.

특히 석택리 환호(環濠)취락 유적은 초기철기 시대 토광묘에서 발견된 흑도장경호는 이 시대의 표지유물로, 흑도장경호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당시 힘 있는 권력자를 정점으로 하는 집단사회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발굴당시 이남석 공주대 사학과 교수도 “초기철기시대 유물은 석택리 유적의 시대적 배경인 3세기 말부터 4세기 초보다 400~500년 앞서 있고 백제시기 석축분은 원삼국 시대를 이어 150년 이상 집단적 거주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추가적으로 발견된 유구들은 초기철기·원삼국·백제시기가 중첩돼 있는 형태로 전국적으로도 많지 않아 가치가 크다”고 밝힌바 있다.

 

조성된 유적 공원의 모습.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처음 발굴된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중요한 유적지로 관리 주체인 충남도와 홍성군이 발굴유적지 보존관리 방침에 따라 원형복원과 함께 국가 사적지 지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석택리 환호유적 주변에서는 이후에도 추가적으로 청동기시대~백제시대에 이르는 유구 등이 확인되는 등 환호유적 주변에 대한 확대 정밀 발굴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석택리 환호취락 유적지 인근에서 또 다른 유적과 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석택리 유적을 국가사적지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종화 충남도의원(홍성2선거구)은 “석택리 유적지역에 대한 발굴과 보존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석택리 유적지는 원삼국시대 환호취락으로, 마한(馬韓)에서 백제로의 전환과정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사적, 학술적 자료가 되는 만큼, 충남도는 문화재청의 의견과 학계의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서둘러 정부에 문화재 지정신청을 하고, 정확하고 철저한 발굴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며, 또한 발굴된 유물의 보존, 전시를 위한 유적지 지정과 공원 등을 조성하고, 수습유물들을 전시할 수 있는 유물전시관이나 박물관 등의 건립이 필수적 과제”라고 제안했다.

현재 충남도와 문화재청은 발굴이 진행된 유적에 대해선 일단 모래와 마사토 등으로 덮은 뒤 원형을 보존한 상태다. 석택리 환호취락 유적지에는 지난 7월 말 도청신도시 진입도로가 완공됨에 따라 공사 마무리 차원에서 ‘석택리 유적 종합안내’판을 세우고 발굴유적 사진과 주구묘 위치에 알림석 등만 설치해 놓은 상태다. 앞으로 체계적이고 철저한 보존방안과 관리대책 등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도 처음 발굴된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석택리 환호취락 유적지의 원형복원과 국가사적지로 지정받기 위해 전체구간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 학술적·역사적 평가와 함께 지역주민들의 여론 수렴이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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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설 2015-08-21 10:39:03
충남도와홍성군은 언제쯤 어떤식으로 개발보호계흭을 갖고있는지. 주변사유지 매입계흭은있는지.반경얼마까지 어떻게계흭은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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