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사랑 넘치는‘ 장곡의 자랑거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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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사랑 넘치는‘ 장곡의 자랑거리 마을’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6.01.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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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면 대현리 1구
마을입구에 세워진 뿌리비석과 장승들.

□대현리1구 마을역사 

장곡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5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대현리 1구 마을은 동쪽으로는 학산산성, 남동쪽으로는 석성산성, 서쪽으로는 숯고개, 북쪽으로는 월현마을 등이 위치하고 있다. 마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특징이며 주변 마을로는 동쪽으로 산성리, 남쪽으로 옥계2구, 서쪽으로 상송리, 북쪽으로 대현 2구가 자리하고 있다.

대현리 지역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했으며, 삼한시대에 마한의 부락으로 사회국가인 사로 국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백제 시대에는 사시량현(沙尸良縣)에 속했고 신라 때는 결성현(潔城縣) 의 영현(領縣)인 신량현(新良縣)에 속했다. 고려시대에는 여양현(驪陽縣)에 속했고 조선시대에는 홍주군(洪州郡), 조선시대 말기에는 홍주군 유곡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현리 평촌(坪村) 대부리(大釜里)일부를 합병해 대부(大釜)와 월현(月峴)의 이름을 따서 대현리(大峴里)라 칭하게 됐다. 대현리 대부동 마을은 서쪽고개와 숯고개 아랫자리에 위치한 마을로, 조선시대에 대부창고가 있었는데 근방의 얼방(乻方), 성지(成枝), 유곡(酉谷) 3면의 쌀을 거둬들여 보관했던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부락 곳곳의 지명으로는 서쪽으로 숯고개, 서북쪽으로 평티, 서남으로 웃골, 남쪽으로 별고개, 중앙으로 아랫말, 동쪽 끝으로 칼바위, 북쪽으로는 월현마을이라 불리고 있다.


□대현리1구 마을전설 

백제시대 대현리 마을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진 풍왕이 피신을 왔던 것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당시 풍왕의 조카였던 복신 장군이 이곳에 주류성(周留城)을 쌓았으나 결국 주류성은 함락됐고 백제는 멸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직까지도 마을 뒷산에 주류성 터가 남아 있다.

또 당시 백제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이들이 많은데,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마을을 자주 방문하고 있다. 왕이 머물렀던 주류성과 함께 무기인 창을 생산하고 보관했던 군창터도 함께 존재하는데, 지금까지도 매년 10월이면 군수가 직접 제주가 돼 이곳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정기영 이장의 마을소개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정이 넘치는 마을로 유명합니다. 작년 10월 쯤에는 마을 입구에 위치한 윤용주 씨 집이 갑자기 난 불에 전소됐죠. 당장 살 곳을 잃어 막막한 용주씨 네를 위해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270여 만 원을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도움을 준 것이 소문이 나 옆 마을과 교회에서도 성금을 모아 전달해주셔서 큰 도움이 됐죠. 또 마을회관 터가 부족했을 때에도 우 리 주민들이 각자 돈을 모아 1500여 만 원을 마련해 함께 땅을 구입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단합돼 여러가지 행사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전통 방식 그대로 달집을 만들어 달집태우기도 하고 쥐불놀이도 하죠. 마을잔치는 말할 것도 없이 많이 하고요. 올해부터는 희망마을 사업으로 마을 경관 가꾸기 사업도 실시하게 됩니다.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청년회입니다. 우리 마을에 살면서 직장에 오고가는 청년들이 10여 명 되는데 다들 어르신들을 공경할 줄 알아요. 마을에 초상이라도 나게 되면 장사 지낼 때도 청년들이 제 일처럼 달려와서 모두 돌봅니다. 다른 부락들은 나이 드신 분들이 상여도 다 매고 하는데 우리 마을은 청년들이 도맡아 하니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앞으로도 이렇게 돈독한 마을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을은 정과 사랑이 언제나 가득합니다.

빨래터로 사용되고 있는 마을 샘터.

□김동헌 노인회장의 마을자랑 

젊은 사람들은 노인덜을 알아볼 수 있어야 돼. 그게 제일이여. 우리 마을 젊은이덜은 노인덜하고 화목하고 다복하게 잘 지내서 그게 참 좋고 자랑거리야. 특히 아들 딸덜이 전국 곳곳에 나가있는데, 가끔 집에 올 때마다 꼭 빈손으로 오지 않고 술이라도 한 병, 과일이라도 한 상자씩 가져와. 그것도 지 부모한테만 드리는 게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한테 다 나눠주는거여. 우리 마을회관 창고에 있는 귤도 제주도 사는 어느 집 딸내미가 부쳐준겨. 그리고 얼마 전에 내가 닭을 몇 마리 내서 주민덜끼리 닭죽도 쒀 먹었다네. 혼자 먹으면 맛 없을 것도 여럿이 나눠 먹으면 기가 막힌다니까. 이렇게 사람 사는 맛이 있는게 우리 마을이여!


□김향숙 부녀회장의 한 마디 

제 소원이 있다면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항상 건강하신 것이죠. 지금처럼 다복하게 어르신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희 마을의 숙원사업이 있는데 그것만큼은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바로 우리 마을 보물 1호인 방앗간 기계입니다. 주민들이 고추도 빻고 떡도 만들고 했던 방앗간 기계가 고장이 나서 벌써 10여 년 전부터 교체하려고 했는데 저희 역량으론 어려움이 있네요. 본래 군에서 보조해주셨던 기계인 만큼 교체할 때도 도움을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대현리1구 마을회관과 노인회관 전경

□대현리1구 마을현황

세대수는 52가구로 100명 내외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희망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뿌리 비석과 장승, 마을 샘터, 평티저수지, 정다운 체험농장, 임산물 판매장 등이 있다.


□역대 마을 일꾼들 

◇대현리1구 역대 이장

△초대 조정희 △2대 김만제 △3대 정철모 △4대 조중달 △5대 정우영 △6대 강정식 △7대 정상관 △8대 염규훈 △9대 정진석 △10대 강선길 △11대 정진석 △12대 정기영 △13대 조광호 △14대 정기영 △15대 정인영 △16대 이철균 △17대 정인영 △18대 정기영(현)

◇대현리1구 역대 노인회장

△초대 김준기 △2대 염규홍 △3대 이석호 △4대 신태식 △5대 김동헌(현)

◇대현리1구 역대 총무

△초대 이석호 △2대 김동헌 △3대 이철균(현)

                                                                                    

우리 마을 밥솥 고치는 날

마을회관이 밥솥을 고치러 온 기사와 아주머니들로 시끌시끌하다.

“아이고, 추운데 어서 들어와. 자 일로 와서 고구마부터 먹어.”

난생 처음 보는 기자가 마을회관에 들어섰지만, 어르신들은 손자를 대하듯 반갑게 맞았다. 마을회관에는 밥솥업체에서 출장을 나온 기사가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보자기에 꽁꽁 싸매 온 밥솥을 꺼내 기사에게 맡기고 있었다.

“마을회관 밥솥이 고장 나서 이장님이 저 사람을 부른겨. 근디 기왕 온 김에 집집마다 있는 밥솥들도 손 좀 봐달라고 가져왔지. 우리 할매들은 고장 나도 저거 들고 어디 못 가. 이렇게 마을에 온 김에 다 같이 봐야지.”

출장기사와 기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연신 웃음꽃을 피워내는 어르신들. 한 어르신은 부랴부랴 밥솥 업체명을 확인하기 위해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그랴. 우리 집 밥솥은 어디꺼여? 아, 그려? 소용없구먼.”

며느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을 닫아버린 어르신은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이내 대접 한 가득 귤을 담아 가져오더니 마을 자랑을 시작했다.

“우리 마을만큼 돈독한 마을도 없을껴. 노인덜은 노인덜대로 점잖으시고, 젊은이덜은 노인덜을 공경할 줄 알고. 이렇게 마을회관에 모여서 밥도 해먹고 하니 얼마나 좋아. 장곡서 젤로 일등 가는 마을이 여기지. 암.”

올해로 86세가 되신 할머니부터 거의 막둥이(?) 수준인 72세 이장님까지 화기애애한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밥솥이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아이고 이제 맘 놓고 밥 지을 수 있겠구먼. 고맙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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