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것들
상태바
우리가 꿈꾸는 것들
  • 윤여문<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6.11.18 13: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에 아들은 더 어른스러워졌다. 몸무게와 키는 벌써 나를 추월했고, 여드름투성이 얼굴과 변성기를 지난 중저음의 목소리는 정확히 어른의 그것이다. 제법 시커멓게 굵어진 아들의 수염을 보고 화장실로 불렀다. 새 면도기를 건네주면서 “아빠 하는 것 잘 봐” 나는 수건에 뜨거운 물을 적셔 수염을 덮었다. 턱과 코 밑 피부가 발그랗다. 비누로 거품을 한껏 만들어 면도할 부분에 정성스레 묻힌 후, “여기서부터 위쪽으로 천천히 긁어 올라가는거야.”

면도 시범을 보이고 있는 나를 아들은 뚫어져라 쳐다본다. 두꺼운 수염이 잘리면서 ‘사각사각’ 은밀하면서도 말끔한 소리를 낸다. “자, 이제 아빠처럼 해 봐” 아들은 날카로운 면도날에 베일까 걱정하면서도 이제는 어엿한 남자가 되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지 꽤나 진지한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해 한 남자로써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방학을 앞 둔 아들이 아빠와 단둘이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싶다는 바램을 이야기했다. 여행이 재미있겠다 싶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행기 표와 펜션을 예약했다. 부자지간의 단촐한 여행을 반기기라도 하듯 8월의 살인적인 여름 햇살 대신 선선한 부슬비가 내렸다. 우리는 아침 일찍 우비를 챙겨 입고 바닷길을 따라 끊임없이 걸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근래에 신경 쓰이는 일까지 모두 꺼내놓았다. 아들이 열다섯 살짜리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하면 나는 마흔 중반의 내 친구 이야기를 했고, 아들이 최근의 고민거리를 말하면 나 또한 내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식이었다. 우리는 좋아하는 자동차 브랜드의 장단점을 늘어놓았고, 각자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과 먼 미래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했다. 그 짧은 여행 마지막 날, 아들이 꽤 당혹스러운 말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빠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무엇이던가. 장차 하고 싶은 것은 본인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누군가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시간이 많으니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함께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5공 청문회가 한창인 오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하릴없이 서성이다가 방으로 들어가 대자로 누웠다. 차가운 방바닥의 기운과 늦은 봄의 열기가 서로 어울려 금세 시원함을 느꼈다. 어른 무릎 높이의 선반에 있는 납작한 라디오가 눈에 들어와 무심히 전원을 켜니 이미 주파수 채널이 맞춰졌는지 잡음 없이 음악이 흘러 나왔다. 리드미컬한 악기 반주에 잔잔하게 읊조리는 보컬의 음악이었다. 난생 처음 듣는 이 뜬금없는 음악을 들으며 나는 시간이 멈춰진 진공의 세상에서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멍한 상태로 꼼짝 않고 누워있었다. 몇 분 동안의 짧은 곡을 듣고 ‘평생을 음악가로 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그 결심 이후, 나는 독학으로 기타를 연습했고, 초급 화성악을 공부했고, 완성하고 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촌스러운 작곡을 했다. 그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평생을 음악가로 살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었고 나는 지금 이렇게 한 남자로 서 있다.

아주 가끔, 내 학생이 음악보다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상담을 신청한다. 나는 혹시 현재 음악전공자로써 해야 할 일, 예를 들어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연습하는 것이나, 밴드를 만들어 밤새도록 합주하는 것, 또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작곡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다른 일에 한 눈 파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한다. 만약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학생 스스로 오랜 시간 충분히 고민하여 내린 결정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지지하고 격려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삶을 개척하고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행복함을 느끼며 어른이 되어간다면 이는 학생의 기쁨이자 곧 나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이런 방식으로 내 부모님이 나를 키웠고,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또한 우리의 아이들이 그들의 아이를 키웠으면 좋겠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