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뒤뜰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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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뒤뜰은 안녕하십니까?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7.10.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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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황선미 지음 | 사계절

예전에 살던 시골집 뒤뜰 야산에는 봄이 되면 머위가 지천이었다. 머위가 다소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잘 자라는 만큼 그 집의 뒤뜰은 늘 습기를 머금고 있는 곳이었다. 봄에 머위잎을 뜯으러 가거나, 한여름 빨갛게 익으며 고개를 숙이는 구기자 열매를 야금야금 따먹거나, 한겨울 보일러를 확인하기 위해 가는 일이 아니면 좀처럼 갈 일이 없는 곳이다. 하다못해 길냥이 한 마리 오고가지도 않았으니 늘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러나 가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옆집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이것저것 불쏘시개들을 모아 커다란 솥에 무언가를 끓일 때였다. 그 집은 옆집과 담장이 따로 없어 옆집이 내 집이고 내 집이 옆집이었다. 특히 옆집 할머니의 딸인 아주머니는 자신의 집 대문이 아니라 부러 내 집을 거쳐 내 집 대문으로 다녔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게 편하다고 하니 나도 굳이 뭐라 그럴만한 이유도 없어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딱히 골칫거리가 될 만한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 속 강노인의 뒤뜰은 골칫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꽤 오랫동안 점잖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강노인은 머릿속에 자라고 있는 암덩어리씨와 함께 오래전 매입했던 집이 있는 버찌마을로 들어온다. 그곳은 이름만 버찌마을이지 마지막 버찌나무 한 그루까지 밀어내고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100번지 일대만 개발되지 않은 건 워낙 언덕배기인 데다 드넓은 야산 때문이었다. 야산자락의 오래된 빈 집, 그래서 마을에서는 거인의 집이라고 부르는 그 집의 주인, 강노인이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강노인이 매입했던 그 집은 강노인이 어릴 적 그 집 창고에서 아버지와 함께 머무르며 머슴살이를 했던 집이었다.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후 입양이 되었고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오면서 그 집을 매입한다. 더 나이가 들어 그 집으로 들어가 살까 했지만 뜻하지 않게 암선고를 받으면서 조금 일찍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집 뒤뜰에 강노인이 모르는 골칫거리들이 살고 있었다.

마을 터줏대감이라 자부하는 장영감의 손녀 미호,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닮은 상훈, 프랑스인 흑인 아버지를 둔 피엘, 인사를 할 때면 무릎을 까닥하는 유리, 그리고 유리의 할머니 송이를 포함해 닭과 강아지, 병아리까지 뒤뜰의 모든 것이 강노인의 골칫거리다. 박 비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지만 무언가 일은 자꾸만 꼬여 가기만 한다. 책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강노인이 죽음을 마주하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대목이다. 강노인의 버킷리스트는 첫째, 먹고 싶은 것 요리해 먹기, 둘째, 악기 배워서 연주하기, 단 한 곡이라도! 그리고 그 집으로 들어오면서 새로 생긴 버킷리스트, 산꼭대기까지 산책하기다. 

밀가루 범벅이 된 수제비를 직접 만들어 늦은 저녁으로 먹는 강노인, 예술적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 한 곡의 연주를 위해 문화센터를 찾아가 기타를 배우는 강노인, 돈 벌고 일 하느라 한 번도 산책을 해본 적 없는 강노인이 정한 버킷리스트는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잘 지키지 못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매일 조금씩 나를 돌아보며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만이라도 하면서 산다면 굳이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또 하나는 마을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다. 도시지만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마을에는 옛날 어릴 적 친구들이 세월의 흔적을 흰머리 두께만큼 간직하며 살고 있으며, 그 집만큼은 마을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사연으로 뒤뜰과 얽혀있다. 자신의 과오를 드러내기 싫은 장영감과 강노인이 어릴 적 살았던 주인집 딸 송이는 치매를 앓아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뒤뜰과 이어진 버찌산을 그전처럼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관리업체 직원이 버찌산에서 주운 도토리로 만들었다는 도토리묵, 기억은 잃었지만 미각만은 살아있어 강노인의 뒤뜰에서 나는 먹을거리로 갖가지 효소를 담아 저장해 둔 앵두효소를 송이가 나누어주면서 강노인은 어린 시절 자신이 품었던 오해를 풀고 상처를 치유해가며 마음의 문을 연다.

마을은 단순히 풍요로움과 넉넉함만을 주는 곳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어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간혹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을 푸는 방법은 단 하나다.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애써 포장하거나 변명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말 한마디가 마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관계를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치매에 걸린 송이가 강노인의 집에 있는 그네에 앉아 강노인을 부른다.

“대수야, 우리 이제부터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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