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과 홍임 母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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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茶山)과 홍임 母女
  • 이재인 칼럼위원
  • 승인 2018.05.2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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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이라 짧은 넉자의 말과 글에서 우리는 촌철살인의 언어 개념의 함축성과 교훈을 지니고 있다. 한자가 유입되고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자성어 책은 지금도 서점가에서 스테디셀러다. 스테디셀러, 이는 파급성이 크다는 의미기도 하다.

가족과 늘 같이 생활하는 옛날 가정공동체는 식구들의 면면을 깔보고 무시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내 살이 남의 피부가 된다면 이는 신선미로 새롭게 볼 수 있지만 같이 주거를 하다 보니 가장이고 또 수하 식구들한테는 그 사람의 장점이나 사람 됨됨이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다산 정약용이 그 한 예다. 다산은 한국 실학계의 거두며 동시에 위대한 선비다. 그가 조선 사회에 심은 실학사상과 이념의 실천자이기에 그릇으로 비유하자면 큰 그릇이다. 다산이 강진 유배지 ‘사의재’에 머물렀던 시기에 도움을 준 소실이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돼 있다. 그 소실 이야기 속에 다산과의 사이에 낳은 홍임이란 주인공 이야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유배 생활에서 50대의 다산에게 홍임 모녀는 그나마 단란한 가족이었다. 외롭고 힘든 유배지에서 소실과 소실의 몸을 통해 출산된 딸은 위안이었고 작은 행복의 원천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산이 유배지에서 풀려나 고향인 마재로 돌아갈 때 홍임 모녀도 함께 돌아가게 됐다. 하지만 홍임 모녀는 마재에 도착해 본가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전한다.

홍임 모녀는 다시 강진으로 돌아와 다산 초당에서 어렵게 살았다. 이렇게 구차하게 살은 홍임 모녀에게는 이유가 여러 가지이겠지만 본 부인 홍씨가 남편 다산이 큰 인물임을 알아보지 못한데 있다. 그래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산이 둘째 아들 학유에게 강진에서 써 준 글, ‘아내가 흠잡을 데가 없지만 아량이 좁은 게 흠이다’라는 글귀가 전한다.

아량이란 우리가 말하는 도량, 사람의 됨됨이, 즉 남을 알아보는 지혜다. 이 지혜는 범인이 갖지 못하는 무기다. 무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경쟁사회, 전시사회에서 무장을 해제당하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자는 한 때 스테디셀러 수험 서적을 출판한 적이 있다. 수험생에게는 문광부 추천 우수 도서였기에 수십 만 권이 20년도 넘게 팔려나간 경험이 있다. 물론 저작권은 그냥 출판사에 기증했던 아픈 사연도 있다. 두 번째 베트남 전쟁의 허상과 비극을 다룬 장편소설 ‘악어새’가 있다. 이 책으로 인해 필자는 무명에서 유명으로, 교사에서 교수로 옮겨가는 신분상승이 됐다. 제법 많이 팔려 출판사에서 10만 부가 팔렸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에서도 출판됐다.

이런 경험을 가진 필자가 노년의 삶을 홍주와 예산 일원에서 농사를 짓고 식물을 키우며 지내고 있다. 고향 사람들이 더러는 ‘저 사람 서점 하다가 망해서 온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서점이 뭐가 어때서가 아니라 사람을 무시하는 농촌 사람들이 왠지 씁쓸한 느낌을 주는 말이다.
등하불명, 우리는 지금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내 곁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 자세하고 낱낱이 살펴보고 등잔 밑에서 환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다산의 아내가 버렸던 홍임 모녀 이야기가 왠지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미투라고 뒤집어 씌우는 계기가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사람이 모든 것을 품을 수는 없지만 지도자에게 아량만은 있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꿈길에서 다산이 홍임 모녀에게 겪어야 했던 아픔이 내 주위에서 서성거린다.

이재인<충남문학관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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