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Saigon)의 추억과 야자수 그늘
상태바
사이공(Saigon)의 추억과 야자수 그늘
  • 김상구 칼럼위원
  • 승인 2019.01.31 09:05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이공에 대한 나의 추억은 흑백사진이다. 지금 호찌민으로 불리는 도시의 옛 이름은 사이공이다. 60년대 후반 청룡, 맹호부대라는 이름으로 동네 형들은 하나, 둘, 월남으로 떠났고, 그들은 야자수 아래 ‘농(Non:전통모자)’을 쓴 여인들과 찍은 흑백 사진을 가끔 보내왔다. 형들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 가져온 나무 상자에서 눈에 띈 것은 미제 통조림이었다. 깡통뚜껑을 여는 작은 깡통따개는 마법의 칼같이 깡통을 돌려가며 절단해 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당시 복숭아 통조림을 식칼로 열고 있었다. 베트공과 싸웠다던 형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나도 사이공으로 군대를 가리라 다짐했다.

지난 일주일간 하노이에서 다낭을 거쳐 호찌민까지 베트남을 10여년 만에 재방문 했다. 흑백사진의 사이공과 하노이의 모습은 이제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발전하고 있는 고층빌딩의 베트남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노이와 사이공의 모습은 서울·부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길거리에 물결을 이루는 오토바이 행렬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자동차 세금을 높게 물리고 있어 쉽게 차를 구입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베트남 사람들을 만났을 때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축구에 대한 열정이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의 이야기만 나와도 그들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베트남 대학의 총장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국에서 베트남 축구를 보며 응원해 왔다고 했더니 미소를 띠며 갑자기 악수를 청했다. 따뜻한 환대가 여행자의 여수(旅愁)를 풀어준다.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한국에서 일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한국 드라마는 베트남 한류현상의 중심에 서있다. 문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말(슬픈열대)처럼 사람들은 그들의 환경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탁월한 문화를 가지기도 하지만, 더 발달한 문명을 동경하기도 한다.

베트남 문화의 형성 배경은 우리와 유사한 면이 있다. 베트남은 한자 문화권에 속했다. 18세기 말 프랑스 예수회 사제들이 ‘쯔놈(Chu Nom, 字喃)’으로 된 베트남어를 라틴 문자로 옮겨 적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문자는 한자였다. 하노이(Ha Noi, 河內)도 홍강 안쪽에 있다는 의미의 단어다. 사이공(西貢)도 서쪽에서 조공(朝貢)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미국이 베트남을 침략하는 계기가 되었던 ‘통낑’만도 동경(東京)이란 단어의 발음이다.

한자 문화권에 속해서인지 어른들을 공경하는 의식이 우리와 사뭇 비슷하다. 중국에서 철지난 성리학이 조선시대의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았듯이, 베트남에서도 늦게 성리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들도 성리학을 공부하고 과거제도를 실시해 성리학을 그들의 사상적 DNA속에 묻어 뒀다. 일본은 성리학이 발전하지 못했는데 베트남과 우리는 성리학이 출세수단의 근간으로 작동됐다. 우리는 지금 그들과 가까운 이웃이 되어 가고 있고, 배경에는 이러한 문화적 동질감이 존재한다.

베트남도 오랜 세월 중국으로부터 시달려 왔고, 프랑스, 미국의 지배를 겪어 내며 독립을 이룬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에릭 홉스봄이 그의 역작 시리즈를 통해 말한 ‘극단의 시대’를 베트남은 거치며 동남아시아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그들은 축구를 통해 더욱 가까운 우리의 이웃이 돼가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진 빚이 있다.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그늘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 따이한’과 동네 형님들이 야자수 아래서 함께 찍었던 사진 속의 여성들의 문제다. 이들은 한국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19년 1월 19일자에 이 문제(한국 병사들에 의해서 강탈당한 여성들: Women raped by korean soldiers)를 크게 다루고 있다.

김상구 <청운대 대학원장·칼럼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진천 2019-02-01 12:43:52
되새김질 역사 계란껍질을 깨어 새로운 관계의 역사를 잉태하기위해 우린 일본처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뼈를 갈아내는 아픔을 우린 심었으면 좋겠다. 언제 까지라도.그리고 가슴 맞대며 더불어 함포고복했으면 좋겠다. 베트남 파팅. ps 생각 심어주는 글 감사합니다.

김창중 2019-02-01 11:47:41
교수님.... 공항에서 갑작스레 만나게되어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더하여, 하노이에서 함께한 맥주와 여러 말씀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