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검둥이’들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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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검둥이’들의 반란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9.08.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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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이용해 아일랜드와 영국을 잠시 다녀왔다. 런던에서 스코트랜드의 에딘버러에 이르는 M6 고속도로 주변에는 양들이 한가히 풀을 뜯고 있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양털 가격이 오르자 귀족들은 울타리를 치고 농사를 짓던 주민들을 쫒아냈다. 소위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의 시작이다. 세월이 흘러 울타리를 쳤던 사람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양들은 여전히 풀밭을 지키고 있었다. 영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강과 바다, 언덕 등에 피비린내 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내전(內戰)과 외부의 침략으로 조용할 날이 많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차창은 빗방울이 노크하고 있었다.

영국의 정식명칭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로 다소 길다. 한때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지만 ‘연합(united)’됐던 나라들이 분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EU에서 탈퇴하겠다는 ‘브렉시트’는 영국의 미래를 예측불허로 만들고 있다. 10월 말이면 그들은 이 문제를 결판내야 한다. 스코트랜드의 종족은 주로 켈트족이고 잉글랜드의 종족은 앵글로 색슨 족이어서 반목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스코트랜드는 영국에서 분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분리 독립 주민투표를 2014년 실시했다. 근소한 차이(51:49)로 부결됐지만 헤어지자는 불씨는 아직 남아 있고, 브렉시트는 이 불씨에 부채질 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과 프랑스가 축구를 하면 이들은 프랑스를 응원한다니 갈등의 심연을 가늠하기 어렵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이곳을 방문해 민심을 달래 보지만 냉랭하기만 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름 ‘오디세우스’라는 배를 타고 스코트랜드에서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 도착했다. 대영제국의 해운업을 도맡아 왔던 그곳의 조선소가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최근 문을 닫았다니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지금, 그곳의 인구는 줄어들었고, 타이타닉 박물관과 그 이름의 호텔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나, 옛 번영을 되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잘나가던 시절, 궁전처럼 지었다는 시 청사에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조선소의 웅장한 크레인 소리를 다시 들리게 할 것 같지는 않다.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내려오자 오 코넬(O’Connel)거리에는 많은 문학가의 동상들이 서있다. 그들은 영국으로부터 아일랜드의 독립을 얼마나 원했던가? 아일랜드 민족지도자 오 코넬과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시인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만 하더라도 백범 김구 선생만큼이나 독립에 열정을 보였던 작가들이다. 조이스는 영국의 지배에 있으면서도 술독에 빠져 싸움질이나 하고, 소란스럽게 정치 논쟁만 일삼는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을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소설에서 핍진성있게 묘사했다.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스스로 바라보라는 의미다. 1845년 대기근(大飢饉)으로 이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지금은, 더블린 중심을 흐르는 리피 강가에 이 처참한 모습을 잊지 말자고 그들은 동상으로 재현해 놓고 있다.

‘가장 슬프고 비참했던 나라’였던 그들이 1921년 영국에서 독립해 지금은 영국보다 국민 소득이 더 높은 부자나라가 됐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아직도 여러 면에서 일본을 따라잡지 못했다. 영국은 아일랜드 사람들을 '하얀 검둥이'라고 타자화 했고 일본 사람들은 조선을 '두발로 서서 걷는 원숭이'로 희화화해 멸시했다. 지금도 그 눈빛을 거두지 않고 있다. 우리는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엄청난 무역적자 속에, ‘NO 아베’를 외치며 ‘죽창가’를 불러야 하는가?

10월 마지막 주, 청운대학교는 한국학술진흥재단 ‘2019년 인문도시’사업에 선정돼 아일랜드, 영국: 한국, 일본의 관계를 ‘의병의 도시 홍성’에서 재조명한다. 군민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

김상구<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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