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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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공무원
  • 정호영(택시기사)
  • 승인 2010.05.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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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당시에는 고통이었지만 수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하나의 추억으로 혹은 우스개 소리로 나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용무가 있어서 관공서를 방문하면 담당공무원이 자기 할 일 다하고 한가한 틈이 나면 그제서야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용건을 밝히고 서류를 내어놓으면 트집잡을 곳이 없나부터 살핀다. 대게는 결격사유를 찾아내어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허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외국을 왕래해 본 친구는 이러한 말을 했다. 민원부서의 공무원이란 어떠한 부서에 근무하던지 간에,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유권해석을 해 처리할 문제들이 수백가지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진국 공무원들은 민원인이 용무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권해석을 하는 반면에,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안 되는 쪽으로 유권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웬만한 일은 잘 되지는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 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준비된 민원인이라도 최소한 담당자가 자기 볼일을 다볼 때까지 기다리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령있는 사람은 담당부서로 가지 않고, 친분이 있는 공무원이 근무하는 엉뚱한 부서로 찾아 간다.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인사를 나누고 용건을 이야기하면, 친분있는 공무원이 해당부서로 가서 용건을 간단히 해결하여 주는 편법을 택하는 것이다.

나는 요즈음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다. 나의 직장 대표이사가 주식회사를 합자회사로 변경등기를 해 버린 것이다. 타인의 동의없이 본인의 생각대로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주식회사는 주주가 주인인 반면에 합자회사는 무한책임사원이 전권을 행사하고 유한책임사원은 배당금이나 수령하는 정도로 법인의 권리구조나 내용이 전혀 다른 것이다. 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선 관계기관에 제출된 서류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군청 행정지원과에 가서 <정보공개청구서>를 작성하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까 담당공무원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처리기간은 일주일이 걸리니까, 담당자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면 해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건설교통방재과> 김 모 담당자 성명까지 가르쳐 주었다.

친절한 조언을 뒤로하고 담당 김 모 씨를 찾아갔다.

구구한 설명과 사정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답변은 검토가 필요하고 결재도 해야하고 등의 이유를 대었다. 금요일 오전인지라 퇴근 전 쯤 찾아뵙겠다고 사정을 하고 돌아왔다.

월요일에 전화통화로 불가입장을 통보받았다. 화요일에 다시 방문하여 사정을 해보았으나 불가입장에 변화가 없었다. 이유는 처리기한이 7일이기 때문에 7일까지 처리하면 된다는 것과 정보공개에 관한 규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여러 문안 중에 지적하는 내용을 보니 '정보공개에 이해관계자가 있을 경우 필요하면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다'라는 규정 때문에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가 아니고 <할 수 있다>라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유권해석이 가능한 것 아니냐고 아무리 사정을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군수실을 찾아가 군수님 비서로 보이는 분께 사정을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담당부서에서 안 된다고 했으면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답변이었다.

지방자치가 시행되고 민원인을 위한 많은 개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우리 군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의심이 간다. 아무튼 나는 그들을 설득할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무기력한 내 자신이 한없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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