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운명, 당당히 맞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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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운명, 당당히 맞서겠다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0.12.10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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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료원 구내식당 조리사 윤한순 씨
남편 사별 후 갓난 자식들 두고 생업전선 뛰어들어, 27년간 홀시어머니 지극정성으로 모셔


윤한순(52) 씨의 고향은 전라북도 고창이다.

6남매 중 큰 딸로 태어난 윤 씨가 홍성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구항에서 농사를 짓던 남편을 중매로 만나 21세 때 결혼한 윤 씨는 1남 1녀를 두고 여느 평범한 가정처럼 행복한 주부로 살았다. 하지만 윤 씨의 이러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한 지 5년만인 윤 씨의 나이 26세 때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과 사별하게 된 것. 당시 4살과 2살이던 갓난 자식들과 홀 시어머니를 남겨놓고 떠난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윤 씨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이들과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 됐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였던 탓에 친정식구들과 주변에서 재가를 권유했지만 윤 씨는 아이들이 받을 상처 때문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혼자의 몸으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한 순간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고된 삶속에서도 자식들을 떠올리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는 윤 씨의 힘겨웠던 지난 날을 들여다봤다.

남편 없이 오이를 재배하며 농사를 짓던 윤 씨는 극심한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 식당일을 시작했다. 앞으로 살 걱정이 막막했던 윤 씨는 처음에는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살아야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 앞에서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27년간 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자식을 키우느라 윤 씨의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오직 정신력으로 꿋꿋하게 버텨 온 것이다.

식당을 전전하며 열심히 살아오던 중 의료원 구내식당에서 근무하게 된 윤 씨는 1993년도에 입사해 18년간을 근속하고 있다. 직업의 특성상 병원 환자들의 아침식사를 책임져야 하기에 새벽 4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5시 반에는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6병동의 60여명의 환자의 식사를 배식해야 하는 윤 씨는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과 남을 배부르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이 일의 매력"이라며 환자들에게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한다. 이러한 윤 씨를 병원 직원들 또한 항상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밝은 모습이라며 칭송이 자자하다.

이러는 와중에 윤 씨에게 또 한번의 아픔이 다가왔다. 당시 두 살배기였던 딸을 떼어놓고 생업전선에 뛰어든 탓에 한창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야 했던 딸은 할머니의 손에서 키워졌다. 시골 농사일로 할머니는 아이가 잠들면 들에 나가 일해야 했기에 잠이 깬 아이는 집안에 혼자 남겨져 있어야 했다. 그런 탓인지 자라면서 아이는 대인기피증이 생겨 엄마인 윤 씨 외에는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학교에 입학해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 증세가 심각해져 29살이 된 지금도 집밖으로의 외출은 꿈도 못꾼다. 이러한 탓에 윤 씨는 병원 일이 끝나면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딸에게 한걸음에 달려가야 했기에 지금껏 살아오면서 잠시잠깐의 여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장남인 아들은 성실하게 잘 자라줘 대학 졸업 후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결혼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윤 씨는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혼자의 몸으로 감당하기에는 벅찼던 것 같다"며 "하지만 퇴근 후 집에 가면 엄마를 돕겠다며 집안 일을 도맡아 해주는 딸이 너무도 고맙다󰡓며 한없는 죄스러움과 함께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 정년퇴임까지 몸 건강하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윤 씨는 딸과 함께 여행을 한번 떠나 잠시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말한다.

힘든 나날을 잘 극복하며 젊은 시절을 다 보낸 윤 씨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당당히 받아들여 맞서겠다는 그에게서 2011년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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