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으로서의 문화-문화는 학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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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으로서의 문화-문화는 학습이다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2.1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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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념으로서의 문화 (다문화 2)

문화권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양식이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해조수인 까치를 길조, 까마귀를 흉조라고 하는 것처럼,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는 생각을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크게 자연발생적인 것과 '반공이데올로기(좌빨논리)'처럼 어떤 목적에 의해서 주입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으며, 묵시적 동의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흔히들 종교와 정치논쟁을 벌이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허상에 불과한 자신의 생각(관념)을 사실화하기 위해 끝없는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내고 절대성을 부여하여 상대적 우위를 점령하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정관념이 절대성을 가지게 되면 종교적 갈등이나 이념갈등처럼 문화적 충돌과 사회혼란이 일어나고, 더 나아가서는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으로까지 비화된다. 왜냐하면 절대와 유일은 배타와 종속ㆍ지배를 낳기 때문이다.

선(善)이란 목적과 방법이 선해야 한다. 그래서 침략을 통해 남을 지배하고 타인을 죽게 만들며 사회를 파괴하는 전쟁은 목적과 방법 모두가 악(惡)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동은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전쟁을 서로가 '성전(聖戰)'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상식적이고 이성적 논리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지만 사회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절대라는 고정관념에서는 진리를 수호하고 정의를 지키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날짜와 시간과 같은 고정관념은 매우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2011년이라고 하는 시간은 인간이 어느 기점을 기준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약속체계이지만 여기에 절대성을 부여함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동서양이 낮과 밤 그리고 태양을 이해하는 방식에서 확연히 들어난다. 우주를 음양의 조화로 보는 동양에서는 낮과 밤을 동등하게 자연의 질서로서 이해하므로 정오는 밤을 잉태하고 자정은 낮을 잉태한다고 보는 반면, 서양은 낮을 선(善)으로 밤을 악(惡)으로 이해하여 낮과 밤은 언제나 대결구도를 가지며, 낮인 선이 악인 밤을 지배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대부분의 서양의 고대신화는 북반구에서 해가 가장 짧은 동지를 악(惡)의 끝으로 보고,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3일 이후부터 선(善)의 시작으로 본다. 그래서 동지 3일 후에 부활하기 시작한 선이 밤보다 낮이 길어지는 춘분(부활절)이오면 선(낮)이 악(밤)을 완전히 제압하여 승리는 거둔다는 기본적인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 같은 고정관념이 종교에 투영되어 사랑은 선이고 신(神)이며, 미움과 증오는 악이며 사탄이 된다. 그래서 절대성이 부여된 고정관념으로서의 종교들은 배타적이고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을 강요하여, 앞서 말한 성전과 같은 비상식적인 논리가 정의와 진리로 둔갑하여 지배와 침략이 정당화된다.

지금 우리가 다문화에 대해서 깊은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와 전혀 다른 고정관념과 삶의 형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부다처제가 헌법으로 보장되고, 여성은 평생 남성의 보호 아래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슬람권의 이주노동자들은 영주를 목적으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한국 여성들을 속여서 결혼을 한다. 그리고 본국으로 데려갈 경우 그들의 관습대로 차도르를 씌우고 철저히 감시(그들의 입장에서는 보호)하여 인권을 유린하면서도 사회적 고정관념에 빠져서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결혼ㆍ다출산ㆍ전도 등) 이슬람인구를 늘려나가 결국 이슬람왕국을 건설하겠다는 목적으로 움직인다. 여기에 대해 독일연방 중앙은행의 이사였던 '틸로 자라친'은 자신의 저서『자멸하는 독일; 우리가 어떻게 우리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나』에서 "동화(거주지의 문화를 인정하지 않으며)없이 혜택만 누리려 하며"… "국가에 의존해 먹고살면서도 이 나라를 부정하고, 자녀교육에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 끝없이 "머리에 히잡을 쓰는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 나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터키인들은 높은 출산율로 독일을 점령하고 있다."며 독일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보다 앞서 독일을 비롯한 서구는 1960~70년대 경제호황기에 대규모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였으나 이민정책(다문화정책)의 실패로 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필자가 이슬람의 예를 들고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서구의 제국주의로 시작된 문화침탈로 우리문화를 잃어 버렸고 그 결과 '우리 모습','우리 것'을 민속촌과 같은 관광지에서 구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화는 학습이다(다문화 3)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백인의 IQ가 흑인보다 높다는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고, 1970년대 들어 몇 몇 학자들의 치밀한 연구 끝에 미국거주 아시아인들의 IQ가 백인들 보다 높다는 결과가 나옴으로서 표면적으로는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으나 여전히 백인우월주의(인종주의)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러한 논쟁은 문화를 유전적 요인이라고 착각하거나, 의도적 지배논리로서 계급사회에서처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신분[종성(種姓:양반․상놈)]이 정해졌다는 관념과 관습 때문이다. 관념과 관습은 태어나면서부터 학습되어지는 사회적 환경으로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비교적 여성해방운동이 먼저 일어났다는 서양문화권에서 조차 아직까지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이나, 기독교나 이슬람 등에서 근본적으로 여성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에 대해서는 별 반응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문화는 유전이 아니라 학습이라고 정의 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가지는 보편성인(추위나 배고픔 등을 느끼는 동물적인 것)인간성은 유전되며, 각 개인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성격은 유전과 학습에 의해서 결정되고, 사회적 행동 패턴인 문화는 학습에 의해서 습득된다고 한다. 이것을 굳이 외부의 환경조작으로 인간행동을 결정지울 수 있다는 행동주의이론으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고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민족의 우수성' 또는 일본이 지배논리에서 만들어 놓고 간 '조선 놈은 맞아야 된다.' 등은 앞서 말했듯이 문화를 유전요인 즉, 인종주의로 규정하려는 의도적 용어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지금 논의되고 있는 다문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문화를 유전적 요인이라고 착각하는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영어와 백인들에게 미쳐서 홍대클럽문화와 같은 저급문화가 용납되는, '백인(영어)우월주의'에 빠진 사회에서는 다문화를 말할 때 언제나 백인은 제외되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이 된다.

문화를 인종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인간은 정치적동물이다'라는 명재로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정치(민주주의)는 폴리스의 시민(그리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문화를 유전적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인종주의는 '인간세상에서, 생물계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논리에서처럼 제국주의침략과 함께 열등과 우등 즉, 유전학적으로 우등한 백인이 열등한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가르쳐 왔으며, 윤치호 유길준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개화사상가들 역시 '앵글로색슨족의 문화와 종교들을 배우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외쳤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 중에 하나인 나치의 유대인 학살사건 역시 이러한 문화인종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대교는 어머니가 유대교인 이거나 유대교를 믿는 사람을 유대인이라고 규정하고, 유대교를 믿는 것만이 성민(聖民) 즉, 하늘로부터 선택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유대교와 게르만민족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나치즘의 충돌은 불가피했고, 힘의 우위에 있었던 나치는 유대인은 사람이 아니라 쥐라고 교육시키면서 종족말살이라는 유대인학살로 이어졌던 것이다.

살펴보았듯이 다문화운동에 있어서 가장 먼저 논의 되어야 할 것이 바로 문화를 유전적 요인으로 착각하는 문화인종주의의 극복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명나라에 이어 소중화(小中華)를 자차해왔고, 제국주의의 힘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를 억압해온 사회에서 상대적 약자로 인식되는 사람들에 대해 가지되는 배타성은 매우 크며, 혈연적민족주의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도 동류의식을 가진 동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인종주는 영원히 극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다문화운동은 그들의 문화를 화합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인정해야겠지만, 그들과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화인종주의의 허상을 극복하고 우리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인 사회와 국가, 나아가서 인류미래에 대한 논의가 우선 되어야 한다.

그것은 문화에 있어서 어떤 외국인이 한복을 입고 우리 춤을 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우리문화를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마치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한국 사람이 미국인이 될 수 없듯이, 비록 이 땅에 사는 외국인이 우리 춤을 추지 못하고 말이 서툴다고 해도 한국이라는 자연과 함께 살아온 한국인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할 때 비로소 하나가 되어가는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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