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항면 대정리 미정마을에 위치한 강진수(47) 씨의 집을 찾은 것은 늦은 오후였다. 마당 텃밭에서 고추를 심기 위해 밭을 가꾸고 있는 부부는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밀짚모자에 장화를 신고 땅을 일구는 호탄토앙(30) 씨의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네 시골 아낙 그대로였다. 호탄토앙 씨가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 지는 3년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10시간 가량 차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던 호탄토앙 씨는 여동생이 먼저 한국인과 결혼을 하여 한국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결혼에 대한 부담감은 적었다고 한다.
남편 강진수씨 역시 이웃이나 친척 등 주변에서 이미 국제결혼을 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지인들을 보면서 국제결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한다.
“민정 엄마를 처음 봤는데 눈이 반짝반짝 하더라구요. 3개월 만에 모든 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함께 돌아올 수 있었어요. 한국에 처제도 있고 해서 아내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쉬웠을 거예요. 얼마 전 장모님도 한국에 오셔서 민정 엄마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라며 남편 강진수 씨는 말한다.
다문화가정을 이루게 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뭐니뭐니해도 의사소통과 문화적인 생활 습관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일 것이다.
“처갓집에 가서 보니 우리나라 헛간 같은 곳에 비만 가릴 수 있는 가리개를 씌워 놓고 평상 하나 덜렁 놓여 있었어요. 옷도 벗어서 대충 걸어 놓고 집 안에 짐승들도 돌아다니죠. 그래서인지 아내가 청소나 정리정돈이 서툴러요. 처음엔 이해가 안 됐는데 나중에서야 우리나라와는 다른 생활문화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민정 엄마가 잠이 좀 많아요. 늘 한국 사람들이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해서 열흘 정도 머물렀는데 가서 보니 베트남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다들 2~3시간씩 습관처럼 낮잠을 꼬박꼬박 자더라구요. 그래서 잠이 많았던 아내를 이해하게 됐어요”
강진수 씨 부부는 지난 달 23일 충청남도에서 주관한 다문화가정 전통혼례식 행사에 참여하여 전통혼례식도 올렸다. 처음으로 입어 보는 우리나라 전통혼례복이 너무 예뻤다며 얼굴에 연지곤지도 붙였다고 서툰 우리말 솜씨로 말하는 호탄토앙 씨의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요새 행복하냐고 물으니 “신랑이 착해요. 많이 사랑해줘요. 아기 이뻐요”라고 더듬더듬 말하는 호탄토앙 씨는 현재의 삶에 무척 만족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말이 통하지 않고 음식도 할 줄 몰라 애를 먹더니 지금은 김치도 잘 담그고 찌개도 잘 끓이고 뭐든 잘 한다”며 옆에서 시어머니 박복순(80) 씨가 며느리 칭찬을 거든다.
홍성이주민센터(대표 유요열)에서 선생님들이 일주일에 한번 씩 방문을 하여 한국 음식을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고 아이들 장난감도 같이 만들며 이주 여성들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다며 호탄토앙 씨는 손수 만들어 달아 놓은 모빌을 자랑했다. 요즘에는 매주 화요일 한글학당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그 곳에 가면 베트남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제일 좋다고 덧붙인다.
“민정 엄마가 워낙 성격이 좋아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우리 사는 모습 보고 주변에서 국제결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꽤 있어요. 굳이 선배로서 충고를 하자면 상대방에 대해 무조건 참고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따지고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문화적 차이는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두어야지 하나로 맞추려 하거나 고치라고 강요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입니다”
노래와 춤에 재능이 있어 보인다는 딸 민정이 자랑을 하는 부부의 모습이 여느 우리네 가정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으며 그저 가족들이 건강하고 아프지 않게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는 강진수 씨가 참 든든해 보였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다문화 가정이 계속 증가할 것이고 다양한 방면에서 정부의 정책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에 앞서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모두 각 개인에게 ‘다문화’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거나 이해하기보다 나와 다름에 대해 경계를 두려는 경향을 지양하자. 나와 생각이 다르면 못 견디고, 나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거나 상대방을 배척하고 나의 틀에 맞추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가정에서부터 나와 다름을 특별함으로 감싸 안고, 배우자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