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잘해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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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잘해줄 걸...
  • 김향동(주부·홍성읍)
  • 승인 2011.09.0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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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몸이 무겁고 잠이 쏟아져서 늦게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는 사이 달력 앞에서 날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달력 앞에 서 있는 이유를 몰랐었다. 잠시 ‘8’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오면서 ‘아! 그렇구나. 큰딸의 생일이 8일이지. 그래서 몸이 무거웠구나.’ 혼잣말을 했다. 한 해 두 해 더해지면서 아이들 생일 때가 다가오면 큰애는 잠이 많아지고, 둘째는 허리가 아프고, 막내아들은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고 결려서 나흘을 고생한다.

어김없이 몸의 증후로 인해 큰아이의 생일을 미리 알았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서 추석 때 먹을 김치를 담글까 생각하고 매일시장 내 단골 아주머니 가게에 들렀다. 아주머니께서 타주신 커피를 마시며 열무, 무, 배추, 오이, 알타리무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올 여름 잦은 비로 채소 값이 비싸고 상태도 좋은 편은 아니다. 그 중에서 알타리무가 김치를 담그면 맛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알타리무 네 단과 큰딸이 좋아하는 오이김치를 담그려고 오이 열 개와 부재료들을 사서 배달시켜 놓고 몇 가지 볼일을 보고 집에 와 보니 김치 담글 재료가 마당 한 쪽에 놓여 있었다. 분주하게 마당에 수돗가로, 주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김치 담글 준비를 하는데 순간, “에이 몹쓸 사람! 무엇이 급해서, 누가 빨리 오란다고 서둘러 떠났단 말인가!” 라는 말이 튀어 나오면서 울컥해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며 동서와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떤 이들은 명절 때만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괜한 신경질을 부리는 등 명절증후군에 시달린다는 것을 수차례 보도를 통해 알았지만, 떠난 동서와는 단 한 번도 얼굴 찌푸리지 않았다. 20여 년을 넘게 명절을 보냈지만, 하기 싫고 귀찮다고 서로 눈치 보며 잔꾀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 밑으로 동서였지만 나와는 동갑내기였고, 늘 긍정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은 예쁘기만 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찾아갈 수 없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동서는 빠르면 명절 전전날이나 늦어도 전날 아침 일찍 와서 도와주곤 했었다. 부드럽고 잔잔한 웃음으로 “형님이 있어 좋아요” 라며 잘 따랐던 동서. 그래서 “동서! 이것 좀 도와줄래?” 라고 말을 해도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때로는 시어머니와 남편 흉을 주거니 받거니 해도 언제나 웃음으로 “우리는 시어머니가 되더라도 그렇게 하지 맙시다” 라고 끝을 맺으며 화기애애 했었는데...

그런 동서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시어머니가 되기도 전, 겨우 50을 갓 넘긴 지난 해 7월 중순경 우리와의 끈을 놓고 말았다. 대학 졸업반인 큰아들과, 군입대를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작은 아들을 놔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들의 손을 어떻게 놓았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슬픔이 밀려와 어깨가 들썩이곤 한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떠날 때는 순서가 없다던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작은 아들 군대 가는 것도 보고, 큰아들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고, 남편 회갑 잔치도 해주고, 며느리도 얻고, 막내 손자는 아니어도 큰 손자까지만이라도 보고 가지… 남아 있는 우리들 가슴에 아쉬움과 그리움만 채워 놓고 허망하게 떠날 수 있었단 말인가! 죽음의 순서를 지키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더란 말인가! 동서가 이토록 그리운 것은 명절 때 잘했던 것도 크지만, 둘째 조카 해산 간을 해주었기에 정이 많이 들어서이다. 나름대로 잘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동서가 떠난 후론 좀 더 잘해줄 걸 아쉬움이 남고 그립다. 가끔 꿈에서라도 만나서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주고받으며 수다를 떨고 싶다. “동서!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 이해해줘”

“형님은 무슨 말을 섭섭하게 해요, 형님이 해산간 해줘서 너무 편안하고 좋았어요. 형님이 있어 명절도 즐거웠구요. 음식을 잘해서 걱정도 안 했고 조카들이 착해서 오히려 제가 편했는걸요.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요”
“고마워 동서. 그 곳에선 아프지 말고 평안하길 바랄게. 잘있어” 라며 동서의 영혼과 대화하는 상상도 해보곤 한다. 며칠 후면 동서의 빈자리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의 시간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겠지…

동서와의 추억에서 빠져 나온 눈앞의 현실엔 알타리무가 적당히 절여져 있었다. 곁에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며 그리움 가득한 김치를 담갔다. 왠지 이번 김치는 더 맛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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