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그리고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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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그리고 대중문화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12.2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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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축제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크고 작은 다양한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속해 있는 ‘홍주문화예술인공동체 너나들이’ 역시 10월 3일 개천절 기념으로 35번째 공연을 계획했으나 대종상시상식 전야제와 날짜가 겹친 관계로 8일로 미루어 진행했으며, 지난 7일에는 홍성문화원에서 ‘송년 가족음악회’를 열었다.

많은 공연들이 나름대로의 목적과 의도가 있겠지만, 너나들이 공연에서 가장먼저 고려되는 것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해줄 것이며, 지역사회에는 어떤 역할을 해 나갈 것인가이다. 이것은 단체의 명칭이 담고 있는 문화와 예술의 범위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아주 쉬운 예를 든다면 ‘축제장에서 흔히 만나는 각설이패의 껄쭉하고 낯 뜨거운 음담패설을 문화와 예술로 볼 수 있을까?’에서부터 전부는 아니겠지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객들이 마른침을 삼키고 숨을 죽이며 모델에게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누드크로키를 외설과 예술로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는가? 등의 고민이라 하겠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왜 서양의 명화에는 누드가 있는 데 동양화에는 없을까?’와 같은 문화예술의 발달과정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이다. 서양사상에 대해서 문외한인 필자가 서양예술을 논하는 것 차제가 주제넘은 일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그 이유를 말해 본다면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절대적 믿음이 바탕이 된 서양에서의 인간은 신이 만든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서 인체 역시 가장 아름다운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이 된다.

이와 달리 동양은 자연을 표현한 산수화가 높이 평가된다. 예를 들면 16세기에 들어 주자학이 심화되면서 주자가 살았다는 ‘무이산’을 그린 ‘무이구곡도’는 동양화의 중심테마가 되었으며, 조선 중·후기에 시작된 진경산수화는 주자의 이상을 조선의 산천에서 찾으려는 노력에서 출발되었다. 이처럼 동양에서의 성현은 서양의 신과 같은 존재였으며, 성현과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믿었던 산천을 산수화라는 기법으로 표현했고, 그것을 통해 성현의 가르침을 내면화 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서양의 누드는 신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세계의 표현으로서 명화이며, 동양의 산수화는 성현의 가르침을 찾아가는 하나의 수행으로서 예술이다. 그래서 예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네”와 같은 일상의 욕구를 뛰어넘는 고차원의 정신활동이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대중문화는 일부 엘리트들만의 고급문화와 서민들의 기층(基層)문화인 민속의 중간 형태로서 교육의 일반화와 미디어의 발달로 두 층의 문화가 교류하며 다양화 된 형태를 말한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흥미위주의 오락과 고도의 정신활동이라는 예술의 교차점에 있고 본다.

따라서 위에서 말한 것들은 대중문화와 민속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측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을 가짐으로서 동물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본다면 대중문화 역시 민속과 대별되는 고급문화의 지향점과 같은 맥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성현의 가르침에 기준을 두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입장은 우리의 전통 대중문화공연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판소리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은 50년이 채 못 되는 시간동안 임진·정유왜란과 정묘·병자호란을 겪으며 사회체제가 붕괴되었고 신분계급의 혼란이 생겼으며, 이때 민중들의 저항의식은 판소리와 탈춤으로 표현되었다.

판소리의 소리꾼이 되려면 4가지의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가 인간됨됨이인 인물새이며, 두 번째는 사설이라 하여 가사에 나오는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의 삶을 통찰하는 학문적 소양이다. 비로소 세 번째가 득음으로서 앞의 두 가지 덕목이 재주로서의 소리가 아니라 도(道)의 경지에서 표현되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그것을 관객에게 전하는 수단으로서 요즘의 연기 또는 애드립(즉흥성)에 해당하는 너름새이다.

이처럼 예술은 인격도야의 한 방법이며, 공연은 대중을 재미→감동→생각의 변화→수행의 단계로 이끄는 수단이 될 때 비로소 문화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요즘 많은 공연자와 기획자들은 끼라고 부르는 재주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오락위주의 대중공연을 소비자인 관객들에게 공급함으로서 대중문화의 질을 떨어뜨리고, 문화와 예술이 가지는 본래의 기능을 퇴색시키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 할 것은 정부가 문화행사를 지원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 쿼트제를 실시하여 오락과 흥미위주 즉, 상업문화와 구별되는 대중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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