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도의 문제이지 학교폭력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나라에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교폭력은 그것이 집단적이고 조직적이며 힘없는 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비정함에 이르러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여 우리의 학교교육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 원인은 뿌리가 깊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인격을 도야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데에 있다’는 교육법의 규정을 들먹일 것도 없이 한마디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의 교육은 천박한 위정자들에 의하여 진정한 윤리나 도덕에 대한 교육은 뒷전으로 밀리고 지식경쟁교육으로 본말이 뒤바뀌면서 학교폭력의 싹은 자라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사랑과 존경과 질서의 핵심인 반면에 사회에서는 법이 질서의 핵심인 것이다.
법이란 무엇인가? 법은 정직이다. 법은 양심이다. 법은 상식이다. 그 근본은 이성적 판단이며 인류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거짓이 불법이고, 비양심이 불법이고, 몰상식이 불법인 것이며 나아가 사람에 대한 미움까지도 불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지난 독재정치 시기에는 법에 따른 질서가 아니고 독재자의 명령에 따르는 질서였다. 한마디로 폭력에 의한 거짓된 질서였던 것이다. 독재자는 어떤 사람인가? 권력을 잡기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이다. 따라서 정직하지도 않고 양심적이지도 않고 인간에 대한 사랑은 추호도 없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정직이라 하여 사람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인가! 독재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독재세력에 거스르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의 인간성이 비굴하고 파렴치해진다는 것이다.
독재사회의 폐습을 다 털어내지 못한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아직도 의리는 없고 이익만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의로움에 대하여는 생각지 않고 이로움만을 좇아서 행동한다. 소수의 있는 사람 위주이지 다수의 없는 사람 위주가 아니다. 억울한 사람이 생겨도 상관하지 않는다. 없는 사람 억울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옹호하려하면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좌익으로 몰려 적으로 배척당할 수도 있다. 관 주도의 사회적 행사나 방송이나 언론은 정부가 억울하고 약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이다. 그러므로 진정 억울한 사람이 없으려면 먼저 법이 제대로 시행되어야 한다. 법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억울한 사람이 왜 생기겠는가? 법질서가 올바로 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힘 있는 특권세력 기득권세력 때문이다. 그런데 그 특권의 우두머리는 누구인가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법을 지키지 않는 데에 모든 문제는 귀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어진임금 밑에는 충신이 있고 난폭한 임금 밑에는 간신이 따른다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독재사회는 질서가 있는 사회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진정한 질서는 아니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하하였던 지난 시기의 민주화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혼란을 두고 과거의 독재추종세력이 이를 마치 민주사회가 바로 무질서한 사회인 것처럼 매도하였었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학교폭력이 근절되려면 학생을 사랑으로 이끄는 존경받는 선생님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선생님을 모시기 위하여는 교육기관과 교육의 민주화가 선결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학교는 병영이 아니다. 교육에 있어서는 명령이나 훈계의 방식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교육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배우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칭찬하고 호기심을 유발시켜서 배우려는 의욕을 고취시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이란 지식의 전달이라는 면에서만 본다고 하더라도 객관적 사실에 대한 수평적인 의사의 소통이다. 즉 가르치는 사람의 인식을 공감하고 이해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배우는 사람의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가르치는 사람의 배우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교육기관의 관료화, 권위주의는 교육에 장애요인이 된다. 때문에 학생과 선생간의 상호존중과 평등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의 민주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선생과 학생과의 관계가 단순히 지식을 전해주고 대가를 받는 거래관계가 아니라 선생은 학생을 관심과 사랑으로 이끌고 학생은 선생을 존경하고 따르는 관계가 된다면 어떻게 학교폭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자면 인격을 갖춘 훌륭한 인품의 선생님이 있어야 하겠는데 이 물질위주의 소득경쟁 지식경쟁 사회에서 그러한 인품을 갖춘 선생님이 어떻게 나올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먼저 올바른 가치관이 있는 도덕적인 사회로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사회를 이끄는 것은 언론과 정치이다. 정치가 바로서야 한다. 정치가 바로서려면 국민 모두가 각성하여야 한다. 국민의 각성을 방해하는 것이 수구언론이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버젓이 목사가 될 수 있는 사회, 최고부자 이건희가 자식에 대한 불법증여로 처벌되고 사면된 후에 첫 번째 한 말로 “우리사회가 좀 더 정직해 져야겠다”는 말을 부끄럼 없이 할 수 있는 사회,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정직하고 양심적이고 가난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대통령을 부패혐의로 궁지에 물아 죽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사회, 남북 간에 화해와 통일이 아니라 대결과 분열을 조장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불법 폭력사회의 모습이 아니던가! 이러한 사회가 바로 학교폭력의 원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까? 이 부도덕한 이명박 정권을 배후에서 뒷받침하여왔던 세력을 정치의 장에서 퇴장시키는 것이 학교폭력을 없애는 긴 여정에서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