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간 돌에 삶을 새겨온 작가 김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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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간 돌에 삶을 새겨온 작가 김오연
  • 황동환 기자
  • 승인 2019.12.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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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한국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
홍성 작가 중 몇 안되는 석조각가
석조각은 돌에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홍성에 위치한 작업장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김오연 작가. 그는 홍성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석조각은 돌에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홍성에 위치한 작업장에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김오연 작가. 그는 홍성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홍성군 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김오연 작가가 제3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전통미술·공예부문에서 지난 19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 작가는 이번 미술대전에서 돌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한 불상을 선보였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은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하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전통미술·공예부문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권위 있는 미술대회로 꼽힌다.

대한민국미술대전은 1년에 장르별로 4회 열리는데 이번에 열린 미술대전은 전통미술·공예부문과 현대공예·디자인 부문으로 나눠 개최됐다. 양 부문을 같이 심사해 대상 1명을 선정한 후 다시 부문별로 최우수상을 1명씩 선정한다. 전통미술·공예부문만 본선에서 600명이 경합을 벌인 가운데 김 작가가 이번에 받은 최우수상은 이 부문 최고의 상인 셈이다. 수상작은 28일까지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갤러리에 전시된다.

김 작가는 4년 전 같은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고, 입선과 두 번의 특선 경력도 있다.

보령이 고향인 김 작가는 올해 나이 59세다. 초등학교 2학년에 부모를 따라 홍성에 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었던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15살에 사촌형 밑에서 돌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때가 1975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직 돌조각 한 분야에서만 44년간 투신해 왔다.

“작은아버지가 채석일을 했다. 오석 생산지로 유명한 보령과 인근 섬에서 돌을 캐다가 망부석 같은 것을 만들었다. 그러다 장손인 사촌형이 작은아버지에게 돌조각을 배웠고, 그 사촌형 밑에서 내가 돌조각을 배운 것이다. 처음 2~3년은 숙련기간이다. 보고 따라하며 배우는 방법이다.”

그가 처음 돌조각에 입문했던 1970년대 한국은 돌 수출이 성황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특히 돌을 가공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석재공장들이 서울 망우동 지역에만 30여 업체나 됐을 정도라고 한다. 그 때 보령지역에서 돌 관련 사업을 하던 같은 동네 사람들이 망우동으로 작업장을 옮기자 그의 사촌형도 그들을 따라갔고 김 작가 역시 사촌형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석재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망우동에서 일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석공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것이 그에겐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나중에 중요무형문화재(석장)가 된 이재순 씨를 스물 한 살 때 우연히 만났다. 당시 같은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그분이 나를 눈여겨본 것이다. 그분은 현재 한국석조각예술인협회 고문으로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충남무형문화재(보령석장)인 고석산 씨다. 이 분은 현대조각을 전공한 사람이다. 40여 년 전부터 석조각에 현대조각을 접목한 분이다. 내가 현대조각에 눈이 트인 것은 그분의 영향을 받아서다.”

 

1990년대로 들어서자 중국업체들이 일본수출의 경쟁업체로 부상하면서 한국의 돌 수출 일감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작업장들도 서울시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 작가 역시 서울과 서울 근교에서 1990년까지 작업했다. 그 이후에는 활동무대를 전국으로 넓혔다.

“처음 내가 다뤘던 분야는 일본 수출을 위한 품목들이었다. 석등, 탑에 들어가는 문양 조각이다. 일본에 수출하는 불상조각도 했다. 아산에 좀 머물다 이 후 본격적으로 사찰 조각을 했다. 해인사, 동화사 등에서 석조각 일을 했다. 동화사에 가면 대형불상 뒤 병풍석이 있는데, 그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부산 사상구에 선광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바위에 직접 조각하는 일을 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높이 10미터 되는 암반위에 7미터 규모로 직접 중부조 형태의 마애불을 조각했다. 10여 년 전인 2008년에 했던 작업이다. 그런데 전통조각은 세밀하다. 이런 이유로 눈이 빨리 노화되기 쉽다. 그래서 눈이 안좋아도 가능한 현대조각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다.”

김 작가가 다시 홍성에 내려오게 된 것은 홍성에서 부모님을 모시던 형님이 30대 초반에 돌아가시면서부터다. 홍성읍 현대아파트 근처에 작업장을 마련했다가 이후 자리를 옮겨 현재의 작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홍성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매년 작품을 만들고 있다. 4년 전에는 고용노동부가 선정하는 우수숙련기술자로도 선정됐다. 그의 다음 목표는 명장이다. 그는 돌이 가진 특성 때문에 한 작품이 완성되면 천년을 간다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작품제작에 임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역 사회의 인식은 이런 면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것에 안타까운 속내를 비쳤다.

현재 홍성에서 돌을 다룰 줄 아는 전문가는 김 작가와 그로 부터 돌 조각을 배운 그의 동생이 전부다. 김 작가는 이러한 홍성의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딱히 제자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없다. 대학을 나온 젊은 사람들이 배우러 오긴 했으나 며칠 해보고 중도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끈질긴 의지력이 있어야 돌조각을 배울 수 있다. 돌은 다루기 힘든 소재다. 강한 돌을 깨기가 쉽지 않다. 숙련이 필요한 부분이고, 그러다보니 배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들이 중학교 때 돌조각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비만이었던 아들을 위해 일부러 강하게 훈련시켰는데, 그게 본인으로하여금 돌조각을 어렵게 느끼도록 만들었던지, 그 이후로 돌조각에 대해 말이 없다가 최근 가업을 이을 의향을 비치긴 했다. 하지만 강요는 하고 싶지 않다.”

 

김 작가가 홍성에 내려온 이후 홍성 지역에서는 문화재 보수 정도 이외의 다른 작업은 하진 못했다고 한다. 그는 지역에서 돌로 만들어진 조형물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홍성에 돌로된 제대로 된 조형물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관심있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홍성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다. 군 단위에 최소한 돌을 다룰 줄 아는 작가가 10여 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사라지면 문화재 보수는 누가 할 것인지 걱정이라는 것이다. 돌로된 문화재를 어떻게 다뤄야할지 군에서 고민해야 하는데, 문화재쪽 인사들도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지역의 상황을 안타까워 하는 김 작가는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현재 유관순 열사 동상을 제작하고 있다. 공주시 영명고(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학교)가 주문한 작품이다.

“홍성에 돌로된 제대로 된 조형물을 세우기 위해선 관심있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하는 김 작가가 현재 바라는 것은 홍성에 활동할 후학들이 자신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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