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위기 몰린 마을, 혜성처럼 등장한 정창욱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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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폐위기 몰린 마을, 혜성처럼 등장한 정창욱 이장
  • 황동환 기자
  • 승인 2020.01.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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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간 단절된 소통의 물꼬 트고 화합 이끌어
주거환경 해치는 축산악취문제 해결이 최급선무
서울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침체된 고향마을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정창욱 용동마을 이장.
서울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침체된 고향마을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정창욱 용동마을 이장.

귀농·귀촌을 위해 외지에서 온 이들과 토박이 주민들간 보이지 않는 벽으로 소통이 단절되고 불화 속에 있는 마을들이 있다. 또한 고령화로 사망하는 탓에 주민은 하나 둘 씩 줄어드는 반면 마을로 새로 전입하는 사람들은 없는 상황에서 한정된 주민들간 불목의 골은 더 깊어질 수 있다. 또한 마을에 들어선 돼지 축사와 가축분표처리시설이 내뿜는 악취는 마을 주민들의 큰 걱정거리다. 여기에 경관을 해치는 문제가 더해지면서 귀농·귀촌을 희망하고 마을을 찾는 이들의 발길을 돌려세우고 있다.

이처럼 마을이 처한 이중삼중의 악조건 속에 놓인 마을들은 주민 수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나 뾰족한 수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마을이 처한 이중 삼중의 악조건 속에 줄어드는 주민들을 넋 놓고 바라보며, 급기야 이러다가 마을이 소멸되는 것 아닌가하는 존폐위기를 걱정하는 마을들도 있다.
농촌인구로 구성된 마을이 대부분인 홍성군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고, 실제로 홍성읍과 내포신도시를 제외하면 홍성군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농촌주민들에게 남의 일만은 아닌 상황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홍성군의 서남부 지역에 위치한 결성면 용동마을의 처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최근 이 마을에 이장이 새로 선출되면서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존폐위기에 내몰린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주민들이 힘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 묘안을 찾기로 한 것이다. 얼마 전 용동마을 이장에 취임한 정창욱(73) 씨가 마을의 새로운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정 이장의 고향은 홍성군 결성면 교항리 용동마을이다. 지금은 폐교가 된 용호국민학교와 갈산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졸업 이듬해인 1964년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고등학교 진학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서울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기 까지 56년간은 고향이 아닌 객지에서 생활을 한 것이다. 서울 대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경찰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상 대학공부는 2년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이후 정 이장이 걸어온 삶의 여정은 여느 보통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그의 삶속에는 정 이장만이 품성이었기에 가능했던 경험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정 이장의 아내는 서울 사람이다. 군 복무 중에 만나 딸 하나를 키워 시집보냈다. 지금은 정 이장 내외 단 둘이 지내고 있다. 
“고향에 내려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특별한 것은 아니고 이젠 나이도 들고 해서 좀 쉬려고 고향에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재작년 그러니까 2018년 10월부터 본격적인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이것저것 준비하고 지난해 3월 완전히 고향인 용동마을로 아내와 함께 내려왔습니다.” 모친이 용동마을에 살고 있어 정 이장은 1년에 서너 차례 고향을 다녀가곤 했다. 그렇게 고향을 찾을 때마다 보고 듣는 마을의 상황은 정 이장에게도 걱정거리였다. 예전의 수려했던 마을의 풍광이 지금은 축사와 가축분뇨처리시설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악취가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환영할 뿐, 도시사람들이 생각하는 전원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 이장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22가구 32명의 주민으로 구성된 소규모 마을이기에 아기자기하고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으려니 생각했지만 사정은 달랐다.
“기존 주민들과 새로 전입해온 주민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가령 귀농·귀촌하는 이들이 있으면 마을 총회 때 정식으로 소개도 하고 그래야하는데 그런 자리가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귀농인 또 저 사람은 귀촌인이라고 하면서 마을에 새로 전입해온 주민들에게 꼬리표를 달아주고 기존주민들과 구분하고 있었던 거예요. 귀농·귀촌한 주민이 8가구 되는데, 그동안 기존의 주민들과 소통은 물론 교류조차 전무했습니다. 이게 제일 안타까웠죠.” 귀향을 준비하기 위해 미리 마을에 내려온 정 이장은 가장 먼저 기존 주민들과 대화가 없었던 전입 주민들을 일대일로 만나 사정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기존 주민들에겐 전입 주민들을 향해 ‘귀농·귀촌’이라는 말을 아예 사용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그렇게 양측 주민들간 ‘보이지 않는 벽’은 서서히 허물어져 갔다. “동네사람들이 지난해 동짓날에 귀촌 주민 집에서 다함께 팥죽을 먹으면서 화합잔치를 했어요. 귀농·귀촌한 주민들과 기존주민들과 교류가 전혀 없던 상황이었는데 제가 와서 대화의 물꼬를 텄죠. 지금은 주민들간 반목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이제 진정한 주민화합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불목하며 살았던 주민들간 장벽을 허물 수 있었던 것은 정 이장이 살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봉사와 희생정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 이장은 14세대가 모여 사는 서울 종로 가회동에서 주민대표를 맡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당시 빌라건물 누수문제나 경로당 건물 등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이 직접 고쳐줬다. 동네 숙원사업이었던 지상 전신주를 지중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식당을 운영하면서 노숙인들에게 매월 한차례씩 무료급식 봉사도 했다. 경찰선도위원회 종로지회장을 맡아 일탈위험에 있는 청소년들을 보살펴준 경험도 있다. “서울에서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농촌과 도시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귀향을 결심했죠. 젊었을 때 객지에서의 내 경험이 침체돼 있는 고향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마을의 현안들을 살펴보니 정 이장에게 지워진 짐이 그리 가벼워보이지 않았다. 그는 △주민단합 △주거환경 저해하는 축산 및 가축분뇨처리시설의 악취 문제 해결 △인구유입, 귀농귀촌인들 유입 대책을 우선 해결과제로 꼽았다.

그의 출현으로 주민화합은 가닥이 잡혔다. 하지만 악취문제 해결이 최대난제였다. 인구유입도 결국 주거환경개선 없이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렴하게 땅을 임대해주겠다는 주민도 있고 빈집을 제공하겠다는 주민도 있어요. 귀농·귀촌희망자들의 초기정착 환경은 90%까지 마련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희망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이 악취문제로 인해 주저하는 것을 봤어요. 결국은 악취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러다 마을이 소멸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마저 듭니다. 결성면에서 지난해 사망자가 60명인데 비해 출생자는 고작 2명인 것으로 조사됐어요. 58명의 인구감소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면장에게 우리마을 상황을 전했습니다. 전입의사를 밝힌 6명이 마을에 들어섰다가 악취문제로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면장도 한숨을 쉽디다. 큰 문제입니다.” 정 이장은 현재 몇몇 주민들과 함께 악취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마을 인근 가축분뇨처리시설 내뿜는 악취로 여름이면 들끓는 파리·모기 때문에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주민동의 없이 설치가 가능한 시설인 것도 의문이고, 냄새를 기준치 이상으로 유발하고 있다면 행정조치가 있어야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죠. 업자의 생활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은 맞지만, 자기 돈 벌려고 동네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비양심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정 이장은 악취문제로 인구유입도 안 돼 마을자체가 존폐위기에 몰려 있으니 관공서도 이 상황을 헤아려 주길 바라고 있다. “가축만을 유입해서 키우려고 하지 말고 사람을 유입하려는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축사관련시설을 늘리지 말 것을 요구했다. 잘못하면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라 홍성군 전체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침체일로에 있던 용동마을이 다시 예전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혜성처럼 등장한 정창욱 이장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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