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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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됩니까?”
  • 한기원 기자
  • 승인 2020.03.2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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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보내온 편지 한 통의 사연

지난 20일 본사 대표이사 앞으로 등기우편 한 통이 배달됐다. 손으로 또박또박 써 내린 글씨가 모처럼 새롭다는 생각과 함께 봉투를 개봉했다. 뜻밖에도 이래도 됩니까?”로 시작되는 편지에는 몇 달 전 군청에서 정년퇴직하신 분을 우연히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자연스럽게 안부를 여쭤보니 군청에서 관리하는 기관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는 이해할 수 없었다퇴직을 하셨는데 어째서 군청에서 관리하는 기관에서 근무를 하고 계시지? 그럼 정년퇴직이 아니라 근무 연장을 하고 계시는 말이 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공무원법에 보면 분명 나이 제한이 있는데 말입니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군청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퇴직을 하셨다면 30, 혹은 40년 공무원 생활을 하셨잖아요. 그럼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왜, 어떻게 군청에서 관리하는 기관에서 다시 일을 하시는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 야단인데 말입니다. 왜 이런 특혜를 이런 분들만 받고 있는지요라고 물으며 퇴직을 하고도 공공기관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면 모든 퇴직자 분들께도 공평한 일자리가 마련돼야 하지요. 누구는 퇴직하고 집에 있고, 누구는 퇴직 후에도 바로 군청 산하의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말입니다. 젊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지 마시고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항의성 짙게 되묻는 내용의 간절함이 배여 있는 편지였다.

맞는 말이다. 사실 고위직 공무원들의 퇴직 후 관련 산하기관 등에 재취업하는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위 줄을 잇는 자신은 물론 자녀들과 친인척까지 빽으로말이다. 고위 공무원 출신의 A씨는 지난달 말 퇴직을 했다.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그가 실업자로 지낸 기간은 없다. 바로 그 다음날부터 산하 공공기관으로 재취업을 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낙하산 인사 척결이니, ‘비정상의 정상화등을 내세우며 고강도 사정 등을 벌여왔지만, 정작 관피아(관료+마피아)’실태는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기관의 공무원이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건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공무원세계의 현실 상황이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재취업을 하는 고위공무원들이 늘어나하면서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역할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1년 개정된 공직자윤리법 17조는 공무원은 퇴직일로부터 2년 동안, 직전 5년간 소속 부서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 등에 취업할 수 없다. 다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때에는 그렇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어느 부서 과장 출신은 어느 기관으로 간다고 정해져 있을 정도로 관피아 관행이 심각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퇴직 1주일도 안 돼 재취업한다는 것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 절차가 서류만 내면 통과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제도의 존재 이유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기우려야 할 일이다.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퇴직 공무원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패턴의 유형은 대략 공무원이 규제를 만들고 그 규제를 이용해 산하기관이나 관련 단체, 협회 등에 재취업하는 공직사회의 그릇된 관행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서 출발한다. 각종 규제 권한을 이용해 이익단체의 기득권을 지켜주다가 퇴직 후 해당 기관으로 옮겨가는 규제 공생현상도 여전한 이유다. 특히 새 업무를 만들어 공무원을 늘리면 그에 맞춰 규제도 계속 증가한다. 규제 개혁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같은 검은 고리 때문이다.

실제로 모 일간신문이 규제정보포털에 신규 규제법령을 공개하는 17개 정부 부처의 인원 정보, 등록 규제 건수, 재취업 실태를 종합 분석한 결과 이들 부처가 2014년 초부터 5년 반 동안 늘린 공무원 인력은 374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해당 부처에서 신설, 강화 또는 일부 수정된 규제는 7361개였다는 것이다.

정말로 공직사회는 과연 변할 줄 모를까. ()피아의 수십년 적폐가 시리즈로 지적되곤 했지만 지금도 여전하니 말이다. 날림으로 과잉 생산된 법과 규정을 완장 삼았던 규제 행정의 실태들도 속속 고발되고 있지만 대오각성도 자기혁신도 조짐이 안 보인다. 일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조언들, 실은 이성을 회복하자는 신중한 제안도 공무원들은 천년만년의 철밥통을 그대로 움켜쥐라는 위안으로 오해하는 것일까.

무엇이 한국사회의 공무원들을 이러한 조직으로 만들었나. 한때 최고의 엘리트라고 자부했던 공복들이 왜 바보처럼, 배운 경험들을 반칙과 변칙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이번에도 기회와 시간은 공무원의 편일까 인가? 순간의 뭇매는 힘들지만 어떻게든 시일만 지나면, 어떻게든 세월을 보내며 명예와 돈만 생기면 그만일까. 어떠한 편법과 변칙으로도 세월만 흐르면 모든 게 이전대로 되돌아갈까. 이제 비판에도 힘이 빠지는 법, 원인을 알아야 해법도 나오는 법이다. 결론은 공무원들의 의식이고 양심이 답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직 기강이 무너진 것은 하루 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는 전문가 사회로 성숙해 가는데 공무원은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여기에 정치, 민선 지방자치라는 이름의 지방정치가 침투한 이유도 작용한다.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공직자 사회도 사분오열돼 서릿발 같은 기강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핑계 좋은 이유로 공직사회가 젊은이들로 세대교체가 돼 말을 듣지 않아 기강이 서지 않는다고 하지만, 밖으로는 줄을 대고 스스로 정치화하면서 기율도 무너지는 것이 고위 공무원들의 오늘의 실상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공직사회의 인식전환이, 고위 공무원들의 반듯한 양심과 신뢰가 쌓인 실천적 자세가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제도도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관료사회는 결코 이익집단이 될 수 없지만 종종 이익집단처럼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국민과 주민들의 대리인들이지만 그들을 향해 친절한 서비스로 책임과 의무를 얼마나 실천했는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무원으로의 습성에 배인 갑질을 하지 않았는지도 반성해 볼 일이다. 공직사회의 일대 혁신이 필요한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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